딸이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딸하고 대책회의를 열었다. 야, 내가 초등학교까지는 참았다. 너 학교에서 중간하지. 전국에 니 동기가 80만명이야. 그중에 중간이면. 아이고 머리 아파. 공부하기 싫으면 학교 가지마. 왜 스트레스를 받니. 안 다니면 돼. 니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 아빠가 받은 스트레스를 너도 또 받을 필요는 없어. 자유롭게 살아. 니가 좋아하는 만화나 그려.
새벽에 딸이 깨운다. 아빠 진짜 학교 가지마? 응. 나 학교 갈래. 뭐하러 가니. 놀러. 뭐라고나. 눈물을 뚝뚝 흘린다. 음. 게시판에 딸을 중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올렸다. 항의 글이 넘쳐난다. ‘아빠의 기준으로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 그것은 공부를 잘하라고 자식에게 정신적인 학대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일일 수 있다. 아빠는 학교가 성적순으로 느껴지겠지만 딸에겐 학교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리는 곳으로 여겨질 수 있다.’ 내 원 참.
야, 화영아 이 글 어떠냐. 짱이야. 니가 리플 달아봐. ‘공부를 못해도 학교를 다니고 싶습니다. 제가 잘하는 걸 찾기 위해 학교 다니는거 아닌가요. 아빠도 학교를 15년째 다니고 글 잘 쓰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 6년 다녔습니다. 6년으로 제가 잘하는 걸 과연 알 수 있을까요?. 공부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적당히 해두는 거라고 합니다.’ 나 가장(家長) 안해. 뭐 할 수 있는 게 없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부럽다.
(이용재·건축비평가 겸 택시운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