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축가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부르기로 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나타나지 않았다. 급히 대타로 나선 어리사 프랭클린은 무대 뒤에서 이 아리아를 단 몇 분 연습하고는 파바로티의 키로 노래해 객석의 넋을 빼놓았다. 어리사가 거의 모든 조사에서 ‘대중음악 사상 최고 여가수’에 꼽히는 힘이 가창력이다. 14세에 데뷔한 ‘솔(soul)의 여왕’은 62세인 지금도 48번째 앨범을 내고 공연을 펼친다.

1989년 일본 가요계 여왕 미소라 히바리가 52세로 타계하자 주요 일간지들은 1면 머리기사로 애도했다. TV들은 장례식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 그는 9세에 데뷔한 이래 일본인의 심금을 진하게 건드리는 ‘엔카(演歌)’ 1400곡을 남기는 동안 ‘일본주식회사의 사가(社歌)를 부른 가수’로 칭송받았다. 교토에 있는 히바리기념관에는 여전히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다.

1960년대 ‘인간으로서의 존경’을 얻고자 거리로 나섰던 흑인 시위대는 어리사의 ‘Respect’를 합창했다. 히바리의 ‘서글픈 술잔’은 전후(戰後) 일본인들의 피폐한 마음을 어루만졌다. 우리의 비탈지고 강파른 삶을 대신 울어 노래해주는 가수는, 단연코 이미자다. 2000곡을 넘는 그의 노래 가운데 한두 곡만 속으로 뇌어도 가슴에서 상처가 씻겨 간다.

지난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미자 노래 45년’을 보러 안동에서 온 70대 할머니는 공연 내내 울었다. 데뷔곡 ‘열아홉 순정’으로 시작한 그의 모든 노래들이 “시집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과 낱낱이 겹쳐서 눈물이 그치지 않더라”고 했다. 사흘 내리 객석을 메운 사람들 앞에서 이미자는 단 한 번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 여느 가수들이 무대에 물병을 갖다놓고 한 곡 부를 때마다 목을 축이는 것이 관객에 대한 무례라고 믿는 탓이다.

가수도 참 많은 세상이다. 하지만 가수라고 다 가수는 아니다. 그 흔한 백 코러스도 없이 바이올린 독주처럼 청랑(淸朗)하기만 한 63세 이미자의 노래는 누구보다 이빨 끝으로 새된 소리를 내는 후배들이 봐야 할 공연이었다. “30년과 40년 공연에 이어 45년 공연을 하는 것은 50년 공연을 할 수 있을지 몰라서입니다.” 이미자의 말에 노(老)관객들은 다시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이 절세 가인(歌人)이 만인에게 건네는 위안과 행복은 50년, 60년 공연에서도 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태진 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