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조사를 위해 이라크 땅을 밟은 것은 작년 9월이었다. 세상에, 이라크가 어떤 땅인가? 바빌론·아시리아·이슬람문명이 차례로 꽃피웠을 뿐 아니라 인류 최초의 문자를 만든 수메르가 있던 곳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럴 수가! 분명 이라크문명의 정수(精髓)를 집약시켜 놓았어야 할 이라크 국립박물관에 들어선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박물관은 약탈꾼의 습격으로 텅텅 비어 있었다. 내가 느낀 자괴감은 현지 전문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국립박물관의 아하메드 박사는“전쟁 때문에 인류 최고(最古)의 유물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밤마다 잠을 설친 게 벌써 몇 달째”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라크에 파병되는 한국군 자이툰 부대에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왜냐고? 그들의 역할이 치안 유지와 이라크의 민주화 정착뿐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문화유산은 그저‘먼 나라의 문화재’가 아니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발상지에서 나온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약탈자의 고대 유적지 파괴를 막고, 도난당한 박물관의 유물을 발견하면 이를 접수해 이라크에 돌려주는 일도 한국군의 중요한 몫일 것이다.
바빌론 유적지에 주둔하고 있는 폴란드군은 엉뚱하게도 자기 나라 고고학자를 데려와 발굴을 벌여 현지인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은 폴란드의 잘못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박진호 문화재 디지털 복원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