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평전

몇 년 전 한신대 총학생회는 ‘늦봄 문익환’의 신분적 정체성을 묻는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문익환을 ‘통일할아버지’라 부를 것인지, ‘문익환 선생’이라 할 것인지, ‘문익환 목사’라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가장 많이 득표한 항목은 ‘선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목사님’이 옳다고 말한다.

이 책은 구약전문의 신학자, 통일운동가, 목회자 등 다양한 얼굴로 세상에 비쳤던 ‘인간 문익환’(1918~1994)에 대한 본격 평전이다. 사람에 따라서 극단적으로 호(好)와 불호(不好)가 갈리는 문익환의 삶을 다루면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촘촘히 재구성하고 있다.

물론 그의 삶을 다루는 대전제는 ‘목사’ 즉 신학자, 목회자라는 것이며 동시에 “그의 정서적 조국은 고구려였으며, 영혼적 혈통은 유목민”이라는 것이 그의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골격이었다.

문익환이 일반인의 뇌리에 새겨진 것은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으로 투옥되면서부터. 그의 나이 58세 때이다. 그로부터 1994년 1월 사면되지 못한 가석방 상태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8년간 감옥 밖에서 생활한 기간은 단 102개월. 그 만년(晩年)의 활동으로 현대 한국인들에게 기억돼 있다.

시인 겸 소설가인 저자 김형수(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씨는 문익환의 그 나머지 빈 부분을 만주와 미국, 일본 그리고 북한을 오가는 현장취재, 60여명에 이르는 관련 인물과의 인터뷰, 50여종의 참고서적·논문을 통해 채웠다.

우리 유민(流民)들이 북간도에 건설한 명동(明東) 마을에서 태어나 3·1 만세운동 당시 아홉 달 된 몸으로 어머니 등에 업혀 처음 끌려간 유치장, 캐나다 유학까지 다녀온 목사 아버지 문재린과 동생 문동환 등 가족이야기, 시인 윤동주와 동문수학한 유·소년시절 이야기 등은 개인사이면서 동시에 일제하 만주지역에 살았던 우리 민족사이다.

일제 말기 일본의 신학교로 유학 가 거기서 평생 ‘연분홍 코스모스’라 부른 미래의 부인 박용길을 만나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은 퍽 낭만적이다.

광복 후에도 소련군이 진주한 만주에 머물며 목회활동을 하다 결국 공산당 때문에 남한으로 들어와 미국 프린스턴신학대로 유학을 떠나고 6·25 와중엔 미군 통역관으로 분단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등이 낱낱이 서술돼 있다.

그후 귀국해 신학대 교수, 성서번역가 등으로 활동하다 전태일 분신사건을 접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이후의 이야기가 작은 활자로 840쪽에 이르도록 장대히 펼쳐진다.

문익환의 삶을 좇는 저자의 치밀함과 유려한 서술은 이 책을 통해 국내 평전 쓰기의 한 모델을 보여준다. 가령 서재까지 뒤져서 문익환이 님 웨일즈의 저서 ‘아리랑’을 74쪽을 접어놓고 그 이후는 읽은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대목에선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