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쯤 이라크에 파견될 한국군 자이툰 부대는 북부 쿠르드족 지역의 도시인 아르빌이나 술라이마니야 중 한 곳에 배치되는 것으로 확정됐다. 쿠르드족 지역은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던 쿠르드족이 현재는 미군의 도움으로 사실상 자치 행정을 펴는 곳이다. 이철민 기자가 지난달 말 술라이마니야를 취재했다. /편집자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450여 ㎞ 떨어진,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 내 최대 도시인 술라이마니야에선 쿠르드력(曆)으로 새해맞이 행사인 나우루즈(봄의 축제)가 한창이다.
도시를 둘러싼 구릉과 초원지대에선 바지폭이 넓은 '샤우랄 쿠르디'라는 남성용 전통 복장과 반짝거리는 '질리 쿠르디'라는 전통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소풍을 나와 어깨가 들썩거려지는 쿠르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인구 150만 명의 술라이마니야에서 보이는 것은 모두 바그다드와 정반대였다. 도시 복판을 흐르는 살림 도로의 양 옆은 온통 쿠르드어 간판과 플래카드의 물결이다. 대부분의 20, 30대 젊은이들은 아예 아랍어를 할 줄 모른다. 자동차들은 적백녹(赤白綠)의 삼색기 가운데 금빛 해바라기가 그려진 쿠르디스탄 깃발을 달고 거리를 질주했다. 이라크 국기는 관공서에만 쿠르디스탄기와 함께 나란히 걸렸을 뿐이다.

바그다드의 중무장한 미군 행렬과는 달리, 이곳에선 미군 1명과 술라이마니야 주 경찰 1명이 한가롭게 교차로에 서 있다. 사람들은 “미국이 우리를 사담 후세인의 폭정에서 완전히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상점 유리창엔 빛바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웃는 사진이 붙어 있다.

미국과 영국은 걸프전쟁 직후부터 이 지역을 이라크공군의 비행금지구역으로 정하고 감시활동을 벌였다. 때문에 이 지역에 1991년 이후 사담 정권의 영향력은 거의 미치지 않았으며 이라크 전쟁 기간 중에도 단 한 발의 폭탄도 떨어지지 않았다. 요즘도 밤 9시가 넘어서까지 ‘서치나 공원’에는 야경(夜景)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빌 만큼 거리는 안전하다.

술라이마니야 시민들은 모두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원했다. 아내, 두 자녀와 함께 시 복판의 아자이디(쿠르드어로 ‘자유’라는 뜻) 공원에 봄나들이를 나온 초등학교 교사 아딜 주와드(40)는 “사담의 바트당 정권 때 아버지가 살해되고, 1982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이란과의 전쟁에 끌려가는 지옥을 겪었다”며 ‘분리된 독립국가’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공원 치안 책임자인 한 경찰간부(53)도 “19년간 페쉬메르가(‘죽음 앞에서’라는 뜻) 민병대에 들어가 전장을 누볐지만, 이제 내 도시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는 느낌을 처음 받는다”며 독립을 꿈꿨다.

‘1991년 할라부자의 학살(사담 정권이 쿠르드족 5000여 명 독가스 살해)을 기억하자’는 구호가 나붙은 음식점 앞길에서 친구들과 차를 마시던 카잘(24·대학생)은 “이곳은 아랍과는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우리 땅”이라며 “99%가 독립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1년 자치를 얻기 전까지 사담의 군대가 저지른 만행을 아직도 기억하기에, “아랍어는 배울 생각도 안 했다”며 아랍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 옆에 있던 무하마드 알리(26)는 “우리를 도와 준 미군 병사가 바그다드에서 죽는 것이 마음 아프다”며 미국을 옹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