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우리 사회의 선거 문화는 아직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미개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다수의 선량 중에서 더 나은 후보를 선택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정란과 무정란을 감별하는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상대를 무정란으로 구분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암적인 제거 대상으로 몰아붙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갈등과 대립은 우리 사회의 일부 지도층이 조장한 허상이기도 할 것이다.
선관위가 대통령 탄핵소추를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다음달 2일부터 전면 중단하도록 결정했지만 그동안의 촛불집회는 시민사회의 변모한 시위 형태를 보여준 좋은 전환점이었다. 점거, 투신, 분신, 화염병, 최루탄, 백골단 등으로 얼룩진 분노와 격정의 과격한 분쟁이 아닌 열린 표현의 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좀더 성숙된다면 찬반 주장이 한자리에서 어울리는 자유 집회도 곧 가능해질 것이다.
엊그제 가 본 촛불집회 장소는 시내 중심가였지만 차량 소통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2차선 연결도로였고, 지나다니기에도 큰 불편이 없었다. 자질구레한 것을 파는 노점상들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작 나를 당혹하게 했던 것은 줄을 맞추어 바닥에 앉아 있던 집회 참가자들이었다. 더러는 연인끼리 더러는 친구끼리, 또 가끔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도 있었다. 그들의 몸가짐에서는 어떤 결연한 운동의 조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은 시위에 동참한 사람들답지 않게 너무나 평온하고 너무나 일상적이었다. 촛불집회를 시위가 아닌 집회로 명명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시위는 어떤 결과물을 긴박하게 이끌어내기 위한 행위지만 집회는 한참 뒤에 거둘 수확을 위해 미리 작은 씨앗을 뿌리는 일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시위는 정치적이며 급진적이고, 집회는 문화적이며 점진적이다.
시위에서 집회로 넘어오는 매개 역할을 했던 촛불 역시 지극히 문화적인 소재였다. 제 몸을 살라 주변을 밝힌다는 점, 잘 보호하지 않으면 쉬 꺼질 수도 있다는 점, 밝기와 따스함과 공기 정화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 등에서 촛불과 문화는 닮은꼴이었다.
촛불집회의 한 귀퉁이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나의 몸은 곧 견디기 힘들 만큼 시려왔다. 봄이라고는 해도 아스팔트는 아직 얼음장 같았고, 몇 년 전의 사고로 인한 혈액순환 장애로 내 몸에는 남과 나눌 온기가 많지 않았다. 그것을 견디고 있는 젊은이들의 더운 가슴이 부러웠다.
서둘러 발길을 돌릴 수 없어 근처 상가 건물 입구에 서서 집회를 한동안 지켜보고 있는데 1층 업소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여인이 수시로 문을 열고 나와 입구를 가로 막고 선 사람들에게 뭐라고 한바탕 욕을 하고 들어갔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대여섯 개의 탁자가 모두 비어 있었다. 울화가 치밀 만도 했다. 그러나 곧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으므로 가게 주인은 수시로 나와서 바락바락 악을 써야 했다.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때마다 두말 않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집회에 합류할 것인지 가던 길을 재촉할 것인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던 그 사람들이나, 당장의 호구지책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었던 그 가게주인이나, 중간쯤 되는 위치에 엉거주춤 선 채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던 나나, 모두 힘들게 한 시대를 넘어가고 있었던 동행이었다. /시인
(최영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