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는 기사를 접하면서, 과연 ‘미래 예측 가능성’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회과학자들이 탄핵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탄핵’은 인간이 합리성과 자율성에 입각하여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를 결정한다는 ‘합리적 선택 이론’에 다시 한 번 의구심을 갖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동안 합리적 선택 이론가들은 특정 상황에서 한 개인의 “평상적인 행동이라든지 자투리 말이나 농담 하나”가 수백만 명의 합리성 기준과 그에 따른 행동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여 왔다.
미국 예일대 사학과의 석좌교수이자 냉전사 전문가인 존 루이스 개디스가 쓴 ‘역사의 풍경’은 예측 불허의 사건들로 점철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인간 행동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과 “역사에서 우연의 역할이 결정적임”을 주장하면서 “역사는 일어나는 대로 결정된다”고 적는다.
이처럼 그동안 인문사회과학에서 폄훼되어 온 ‘우연성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리해 놓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역사학 입문서로 자리 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좀더 구체적으로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는 것은 20세기 중·후반까지 과학계를 지배하고 사회과학자들의 연구방법론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던 뉴턴식의 선형적이고 예측 가능성을 띤 세계관의 결과물로, 이 같은 뉴턴식의 패러다임은 이제 “구시대적 유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급작스러운 변동과 파격적 사건으로 가득 차있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역사학은 어떠한 탐구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가?
개디스는 특이하게도 ‘새로운’ 자연과학과 역사학의 방법론적 접목에 주목한다. 동시에 그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원인의 다원성이나 문화적·개인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반화를 추구하면서 ‘과거의 추적’을 간결성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데 골몰해 왔음을 통렬히 비난하고 있다. 이처럼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하는 개디스는 신(新)자연과학이 인문사회과학에 필요한 학문적 도구를 제공한다고 보았다.
이미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의 영향으로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현상이 관찰자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카오스와 복잡성 그리고 임계성과 같은 ‘신’과학 이론은 역사가에게 패러다임의 전환과 더 많은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논점이다.
물론 자연과학과 역사학은 탐구 대상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탐구 방법에 있어서 둘 사이의 경계선은 흐릿해지며, 새로운 과학의 어휘들은 사회과학적 용어들보다인간 행동의 특이성을 설명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저자는 본다.
‘역사의 풍경’은 1990년대에 쓰인 저자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러한 이유로 비슷한 내용의 논지가 곳곳에 반복 서술되기도 한다. 하지만 복잡한 내용을 ‘존 말코비치 되기’ ‘세익스피어 인 러브’ ‘반지의 제왕’과 같은 영화를 통해서 설명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독자에게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차용구·중앙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