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정부든지 세금을 걷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세금은 오래가지 못한다. 17세기 영국의 총리였던 월폴은 호화주택에 세금을 부과했다. 처음엔 벽난로가 있느냐 없느냐로 호화주택을 따졌으나, 파악이 어렵자 창문 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대안을 내놓았다. ‘창문세’가 도입되자 국민들은 집의 창문을 없애버렸고 결국 세금은 폐지되었다. 유럽에서 시행됐던 장례세·공기세·독신세·초야세(初夜稅) 등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러시아 근대화를 이끈 표트르 대제는 희한한 세금을 만들어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서구문물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국민들에게 긴 수염을 깎도록 명령했다. 국민들은 ‘수염은 하느님이 주신 것인데 어떻게 깎느냐’며 격렬히 저항을 했다. 그러던 국민들이 ‘수염세’가 도입되자 세금을 아끼기 위해 너도나도 수염을 깎기 시작했다. 세금이 국민의 생활양식을 바꿔놓은 사례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불평등한 세금이 불을 붙인 민중의 봉기였다. 당시 인구의 2%에 불과했던 성직자와 귀족들은 토지와 관직을 독점하면서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반면 농민들은 소득의 80% 가량을 지세(地稅)와 인두세(人頭稅), 십일조 등 각종 세금으로 내야 했다. 농민이 가장 증오했던 세금은 염세(鹽稅)였다. 정부가 소금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면서 시세의 10배에 팔아 원성을 샀던 것. 농민들이 ‘앙시앵 레짐(舊체제)’ 타도를 부르짖는 시민계급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데도 염세가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가혹한 세금은 역사의 진로도 바꿔놓는다. 18세기 중엽 영국은 갖가지 세법을 만들어 미대륙 식민지 주민들의 주머니를 쥐어짰다. 이에 주민들은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납세거부운동으로 대항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1773년 보스턴 항구에서 터졌다. 시민들이 영국 선박에 난입, 항의의 표시로 배에 있던 차(茶) 상자들을 바다로 던져버린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고, 미국 독립운동의 발화점이 되었다.

국세청은 엊그제 우수납세자에게 우대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금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세금을 합리적으로 걷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성실한 납세자를 귀중하게 여기는 풍토다. 영국인은 관공서에 청원서를 낼 때, 첫 문장을 ‘납세자인 나는(I, taxpayer)’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납세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옳게 벌어 세금을 많이 낸 사람들이 대접받는 국가가 바로 선진국이다.

(송양민·논설위원 ymso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