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얼마 전엔 권사로 취임하셨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새벽기도에 가려고 일어나시는 실루엣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추운 겨울 새벽, 철제대문의 잠금고리가 ‘덜컥’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주 잠에서 깨곤 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또 두줄 세줄 밑줄 그어진 낡은 성경책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어느 날 저녁의 아름다운 기억 한 토막도 함께 따라온다. 아마도 1979년도였을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 무렵 어머니는 여덟 살의 쌍둥이 형제를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부르셨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찬장 문을 여시고는 보자기로 싸놓은 어떤 상자를 꺼내시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셨다. “성경이야기 전집이란다. 엄마가 너희에게 주는 선물이야. 믿음의 조상들 이야기지.” 형과 나는 하얀 박스가 빛나는 성경이야기 책을 두 손에 받아들었다.
어렸던 나는 어머니가 왜 하필 어두운 부엌의 찬장에서 성경이야기 책을 꺼내놓으시는지 알 수 없었다. 그 까닭을 안 건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였다. 형편이 어렵던 시절,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성경이야기 전집을 할부로 들여놓으시고, 퍽이나 마음 졸이셨던 것이다.
나는 그 기억을 보석처럼 세공하여 가슴 속에 들여놓았다. 한 세트가 여섯 권이었던 성경이야기 전집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멋진 그늘을 만들어 주던 고향집의 감나무는 이미 베어진 지 오래지만, 시골 부엌의 그 시큼하고 텁텁한 냄새를 몰아내면서 환하게 빛나던 젊은 엄마의 수줍은 미소는 지금도 내 가슴 속에 들어 있다.
(김도언·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