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로 유명한 조선시대 화가 정선은 시인 이병연과 평생 서로의 작품을 주고받으며 친교를 나눴다. 요절한 시인 이상과 그의 초상(肖像)을 그린 구본웅 역시 시와 그림의 친연성을 우정을 통해 보여 준 사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발 더 들어가 보면 어떨까. 시와 그림이라는 기호(記號)는 어떤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기에 “형태 없는 그림이 시요, 소리 없는 시가 그림”이라는 비유를 듣고 있을까.
청주교대에서 국어교육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문학과 미술이라는 두 장르의 겹침과 갈라짐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인물이다. 99년에 나온 ‘시와 그림의 황홀경’과 2002년에 나온 ‘요절:죽음은 왜 그들을 유혹했을까’(주로 한국의 요절화가들에 관한 내용이었다)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한 단계 높은 ‘심화학습’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2004년의 대한민국에서, 영상이미지와 문자가 결합한 양태를 살피고, 현재의 멀티미디어적 환경을 가능하게 만든 시(詩), 서(書), 화(畵) 일체의 전통과 그 역사적 맥락을 성찰해 본다.
또 은유와 환유라는 핵심어를 바탕으로 시와 그림의 관계를 유형화했다. “난을 치는 방법은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깝다. 반드시 문자향 서권기가 있은 연후에야 얻을 수 있다”고 한 추사 김정희의 가르침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