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스카이(袁世凱:1859~ 1916)는 중국 허난성(河南省) 샹청(項城)의 군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과거에 응시했지만 실패한 후 우장칭(吳長慶)이 이끄는 군대에 들어갔다.
1882년 조선의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우의 군대가 파견되자 그 막료로 따라왔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천진조약(天津條約)에 따라 청과 일본 군대가 철수하면서 1885년 여름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5개월 만에 조선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쥐고 다시 돌아왔다.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청이 패배한 후 조선을 떠난 그는 수도 베이징이 있는 직예성(直隸省) 안찰사로 천진 부근에서 서양식 군대를 훈련시켰다. 1901년 청의 실권자였던 이홍장(李鴻章)이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 직예총독(直隸總督)이 되어 정치적 위상을 강화했다.
청 왕실과 귀족의 견제로 1908년 정계를 물러났지만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하자 청과 혁명군 양쪽의 동의 하에 내각 총리대신이 됐다. 이어 청이 무너진 후 혁명군의 임시 대총통 쑨원(孫文)을 밀어내고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초대 대총통에 취임했다.
1916년 1월 스스로 황제라고 칭했지만 안팎의 압력에 의해 3개월 만에 황제 제도 취소를 선언했고, 계속되는 반원(反袁) 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