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들이 모여 삼겹살 구워 먹는다고 하면 또 ‘도덕적 해이’라고 하겠죠? 빚도 못 갚는 주제에 한가하게 소주파티 벌인다고….”
20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60여명의 남녀노소가 한 방을 가득 메운 채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20대 사회초년병에서 주부, 50대 명예퇴직자까지…, 이들은 인터넷 ‘신용불량자클럽’의 회원들.
지난 10일 정부가 ‘배드뱅크’ 등을 골자로 하는 신용불량자 대책을 발표한 후 처음으로 가진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소주가 어느 정도 돌아가자, 3~4년간 이 모임에 몸담았던 ‘선배’들의 경험담과 미니강의가 이어졌다. 회원들은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까지 해가며 경청했다.
김모(여·42)씨는 “5년 동안 잠 안 자고 빚 7000만원을 열심히 갚아나갔으나 이자가 30%라 오히려 7500만원으로 늘어 있었다”며 “신용불량자가 되면 인생 끝나는가 싶어 이리저리 사채를 끌어썼던 것이 실수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일을 시작해 생활을 안정시키며 빚을 갚아나가는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작년 9월 신용불량자가 된 이모(여·42)씨가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둥 이렇게 뻔뻔한 사람 처음 봤다는 둥 금융기관에서 협박전화에 문자메시지까지 계속 와 위염을 달고 산다”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우울하게 말하자, 다른 회원들이 “신용불량자는 금융거래가 제한됐을 뿐 다시 갚아나가려고 노력하면 신불자 신세를 면할 수 있다”며 격려해주기도 했다.
이어 회원들은 ‘배드뱅크’에 대해 토론을 벌이며 “빚을 갚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준 것은 일단 환영”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몇몇 회원들은 “정부가 다양한 채무자의 현실을 고민하지 않고 그저 신용불량자 숫자만 줄이려고 하는 게 문제”라며 “가장 중요한 건 일자리가 생겨 생활이 안정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0년 만들어진 ‘신용불량자클럽’ 인터넷 모임은 회원수 5만7000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