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여론과 법리를 거스른 거야(巨野)연합의 무리수는 패착에 가까운 것이었다. 탄핵안 가결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그것을 입증한다.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던 정치판을 일거에 뒤집으려 했던 정략이 최대 악수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조성된 탄핵정국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침몰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총선은 야당의 책임을 묻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직업정치인의 막중한 임무를 다시 묻게 된다. 사회학자 베버는 ‘열정, 균형감각, 그리고 책임윤리’를 프로 정치인의 필수적 자질로 꼽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책임윤리는 행위의 예견가능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하며, 선한 의도만을 중시하는 주관적 도덕성과는 다른 차원에 위치한다.

정치인에게 책임윤리가 중요한 이유는 정치가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엄중한 사태 때문이다. 나아가 선이 반드시 선을 낳거나 악이 악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비극적 역설(逆說)이 정치에 고유한 책임윤리의 지평을 한층 무겁게 하는 것이다.

다수의 민의와 법적 상식에 배치되는 탄핵을 강행함으로써 국정을 혼란하게 만든 거야(巨野)는 헌법재판소 판결 이전에 이미 정치적 책임윤리라는 역사의 재판관에 의해 파산(破産)에 가까운 선고를 받았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어떤가? 거두절미해서 나는 정치적 책임윤리라는 잣대로 판단할 때 오늘의 총체적 위기상황에 대해 노 대통령이 야당 못지않은 책임을 져야 된다고 본다.

한국 민주주의를 굳건한 반석 위에 올리고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예비해야 할 참여정부의 책무가 노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와 거듭된 실정에 의해 배반당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논리가 케케묵은 양비론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의 소재와 경중을 확실히 밝히는 입체적 양비론은 오히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을 수 있다.

약체로 출발한 참여정부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통합과 상생(相生)의 정치를 폈어야만 했다. 그러나 취임 이래 대통령은 줄곧 뺄셈의 정치 행태를 보여왔다. 원칙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스스로를 소수로 고립시켜 온 것이다. 이는 시민들을 자발적으로 모아내고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는 정치적 리더십의 원리에 반한다. 지난 1년간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 각종 국정현안들의 표류와 정치적 불안정성의 심화가 그 대가였으며, 탄핵사태가 그 정점에 놓인다.

대통령이 그토록 중시한 원칙이라는 것도 ‘10분의 1’이나 ‘티코자동차’의 비유가 예증하듯 자신은 깨끗하며 선한 의도를 갖고 있으니 믿어달라는 주관적 호소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우리는 노 대통령이 국리민복이라는 정치적 책임윤리의 지평보다 개인적 도덕성에 더 집착하는 것을 본다. 탄핵이라는 파국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기름을 부었던 대통령 기자회견에서의 변명이나, 한국이라는 정치공동체 전체의 명운(命運)을 담보로 한 재신임 언명 같은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은 그 압축판이다.

대통령 탄핵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탄핵사태에 대한 분노가 정치인 노무현이 노정(露呈)하는 책임윤리의 부재에 대한 면죄부로 이어지는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궁극적으로 정치는 치세의 결과에 의해서 판단되기 때문이다.

(윤평중·한신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