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 교수는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덕분”이라고 했고, 분석기기 제조회사 현장 주임은 “실패로 맞은 우연한 발견”이라고 했다. 2002년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각각 받은 고시바 마사토시(小紫昌俊·78) 도쿄대 명예 교수와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45) 시마즈 제작소 연구원의 소감은 이렇듯 겸허하지만 경건하다. 패전국 군인의 아들로 빈곤과 소아마비의 불운을 반전시킨 고시바 교수, 학사 출신에다 범상한 지능으로 평가되는 엔지니어 다나카는 각각의 자서전을 통해 일하는 쾌감과 열정의 가치를 전한다.
초신성 뉴트리노를 관측해 1988년 이래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고시바 박사의 생은 순탄치 않았다. 도쿄대 물리학과 재학 당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고, 그 바람에 성적은 밑바닥이었다. 2002년 3월 모교 졸업식 축사 때, 그가 거리낌 없이 공개한 학부 성적(수우미양가)은 우 2개, 양 10개, 가 4개로 과 말석(末席)이었다. “학업 성적이란 ‘수동적 인식’을 얼마나 잘 했는가를 의미할 뿐이고,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을 격려하고 싶었다”는 게 공개 취지였다고 한다.
고시바 박사는 오기만큼은 수석이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에 유학해 20개월 만에 학위를 받아 그 대학 최단 기록을 세운 데는 ‘월급 400달러’의 절박한 꿈도 한몫 했다.
“자연에는 우리 머리로 상상 못할 숱한 사실(fact)들이 숨어 있다. 우선 열의를 가져라.” 고시바 교수는 일본의 이공계 이탈 현상에 대해서는 “과학이 어려운 게 아니라 과학교육이 어려운 게 문제다. 스스로 실험하고 다양한 생각을 갖도록 해 ‘과학은 재미 있는 공부’임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노벨상 두 번째 최연소 수상자, 최초 학사 출신인 다나카는 “실패를 거듭해 경험이 쌓이면 감각이 예민해진다. 실험은 이론을 확인하고, 이론이 없는 경우 실험 실패를 반복하면서 감(感)이 생긴다”는 고시바 교수의 말을 금언처럼 받든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성격이 급해서 빨리 결과를 알고 싶었고, 잘못한 것이라도 실험을 중단하지 않고 관찰해 얻은 결과’라고 했다. 첫 입사 시험에 낙방했고, 전공(전기공학)과 다른 원치 않은 업무를 맡은 그의 첫 사회 진출은 ‘변방(하류) 인생’에 머물 소지가 많았다.
그는 실험의 즐거움 때문에 현장 기술자(metal-collar)로 남기를 원했고, 노벨상 수상 이후 승진·포상 같은 세속적 가치에 무심해 세인들로 하여금 행복의 의미와 일의 가치를 재음미토록 했다. 그는 ‘음지의 모든 일꾼들을 위하여’라는 후기(後記)에서, “내가 괴짜인지 모르겠지만, 손을 움직이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밝혀 나가는 일을 좋아하는 기술자로서 과학과 연구 개발이 중요하고 재미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았으면 한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