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령왕릉 발굴이 있은 지 20년이 지난 1991년, 저자는 우연히 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관의 아주 작은 조각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이 관의 재질이 밤나무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현미경 접안렌즈로 들여다본 그는 잠시 후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럴 수가…, 이건 금송(金松)이잖아!”
금송은 세계에서 오직 일본 열도의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는 나무다. 학계는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이 관이 일본에서 건너온 목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기록을 증명하는 동시에 백제와 일본이 기록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밀접한 관계였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교수인 저자는 고고학계에서 명성이 높은 ‘목재조직학’의 전공자다. 고도(古都)인 일본 교토에서 유학하던 도중 ‘나무 문화재’의 매력에 빠져든 이후 손톱만한 표본을 붙잡고 전자현미경과 씨름하며 30년을 보냈다.
그는 “나무는 선조들의 삶을 지켜온 현장 목격자”라며 “집 짓고 음식 해먹고 살림살이를 만들어 온 5000년 민족의 생활에는 언제나 나무가 빠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기가 막힌다.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책은 평소 많은 사람들이 그저 무심히 지나쳤을 오래된 나무조각 하나에 얼마나 유장한 역사의 흐름과 문화의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담담한 어조로 깨우쳐 준다.
신라 고분에서 나온 ‘천마도’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재료인 백화수피(白樺樹皮)에 방부제 역할을 하는 큐틴이 많이 함유돼 있었기 때문. 하지만 저자는 이 백화수피가 자작나무 껍질이 아니라 신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제수나무나 사스레나무일 것이라고 말한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경판은 재질 분석 결과 대부분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였고 강화도가 아니라 해인사 근처에서 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인들이 가장 우아한 예술품이라고 아끼는 ‘목조반가사유상’은 일본 유일의 소나무 불상이기 때문에 한반도 제작설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천년 왕국 신라를 망하게 한 것은 ‘숯’이었다.” 무슨 얘길까? 제철의 중요한 연료였던 숯은 신라 후대로 내려오면서 사용처가 넓어졌다. 고급 숯은 연기가 나지 않고 열량이 높아 난방기구나 밥 짓는 연료에 제격이었던 것. 숯을 얻기 위해 수많은 나무가 잘려나가 자원이 고갈됐고, 가뭄과 기아가 뒤따르게 돼 국가의 기강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나무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서로 나눠 가져야 할 양분을 독점하며 ‘얌체짓’을 하는 칡과 등나무를 꾸짖으며 은근히 인간 세상을 비판한다. “고향 땅 숲 속의 터전에서 뽑히는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한 뼘 남짓한 작은 통 속에 갇혀 삶의 기원인 뿌리부터 제자리 돌림으로 얼기설기 엮어야 겨우 생명을 부지한다”며 분재(盆栽)를 한탄하는 데서는 철학적인 경지마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