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3년 8월 16일 폭풍우 속에서 제주도에 난파된 네덜란드 선원 헨드리크 하멜. 황금의 땅을 찾으러 아시아로 향했던 일행 중 한 명인 하멜은 조선에 발을 디디면서 일기를 남겨 서구에 최초로 한국을 알린 인물로 남았다.

350년이 지나 네덜란드의 감독 얀 헨드리크 디하르토그씨가 다큐멘터리 영화 ‘하멜의 지평선’을 통해 그 역사적 궤적을 되밟아보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조선으로 건너와 생경한 문화에 낯설어했던 하멜이지만,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은 반대로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된다.

“네덜란드로 입양된 ‘아네믹 남’(한국명 남혜영·29)을 통해 문화가 완전히 다른 나라에 홀로 남아 겪어야 했던 하멜의 350년 전 상황을 그려봤습니다.”

그는 특히 당시 하멜이 조선으로부터 하사받은 성이 남씨였기 때문에 남씨 성을 가진 주인공 ‘혜영’이 하멜의 먼 후손일지 모른다는 설정도 했다.

디하르토그 감독은 “하멜도 한국에 난파돼 왔지만 결국 ‘입양’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가 하멜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지난 97년이었다. 아시아를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을 우연히 방문했다가 하멜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에 대해 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영화 공부를 하다가 할리우드 영화제작사에서 감독으로서 기본기를 익힌 그로선 놓칠 수 없는 영화 소재였던 것이다.

그는 9개월 동안 낮에는 주로 학원 등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시간이 날 때면 전남 등 하멜이 머물렀던 곳을 찾아 자료를 모았다. 처음에는 외교통상부·코리아재단 그리고 하멜의 고향인 호르컴시(市)가 초기 제작비 일부를 지원했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네덜란드로 돌아가 4년여 동안 회사에 취직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촬영하는 생활을 이어갔죠. 행운이 따른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히딩크 열풍이 불면서였어요.”

디하르토그 감독의 하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자 LG필립스·쉘·유니레버·대한항공 등이 모두 8만유로를 제작비로 내놓은 것이다. 영화 촬영은 2002년 9월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52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9월 네덜란드 호르컴시가 마련한 하멜 행사에서 처음 상영돼 호평을 받았고, 한국에서는 지난 2월 주한네덜란드 대사관 주최로 선재아트센터에서 상영됐다. 그는 “조만간 암스테르담 영화제 등에 출품할 예정”이라며 “하멜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러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