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을 집중적으로 다룬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4월 2일 개봉)는 종교‘영화’라기보다는 ‘종교’ 영화에 더 가깝다. 독실한 신자인 멜 깁슨이 감독과 제작까지 직접 맡은 이 영화에는 스타도 없고 드라마도 없다. 여기엔 오로지 무지막지할 정도로 우직하고 직설적인 신앙심만이 담겨 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고대의 어느 ‘죄수’의 처형을 소름끼치는 가학적 혹은 피학적 묘사에 담은 기이한 영화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등장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도 종종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짐 카비젤이 예수역을 맡은 이 작품은 영화적으로 세련되지 못했다. 채찍으로 내려치며 폭력과 조롱의 쾌감에 젖는 로마 병사들이나 피에 굶주린 유태 군중들 묘사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중간중간 과거 장면들의 삽입도 리드미컬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어차피 이 영화를 볼 관객 대다수는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인과 함께 극장에 들를 사람들일 것이다. 이 작품의 가치를 가장 잘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신자이다. 평가하거나 비판해야 할 영화가 아니라 고백하거나 무시해야 할 영화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부활절 전후해서 보게 될 기독교인들은 결코 팔짱을 낀 채 작품을 대할 수 없을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십자가 처형과 부활로 끝나는 이 영화는 대부분 신약성경에 충실하게 각색되었지만, 적잖은 부분에선 영화적 상상력을 적극 가미했다. 슬로 모션이나 장엄한 음악으로 중요 장면에서 방점을 찍는 방식뿐 아니라 악마가 성난 군중 사이를 서성대는 모습을 계속 묘사하는 구체적 장면까지 그렇다. 할리우드 평균 제작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저예산 영화지만, 복음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마태복음’처럼 ‘가난한 종교영화’와는 그 풍부한 스타일에서 확연히 다른 위치에 서 있다. 동시에 50~6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붐을 이루고 제작됐던 종교영화들의 세련된 오락적 성격과도 금을 긋고 있다. 미국에서 개봉돼 소위 ‘반유태주의’로 논란을 빚었지만, 이 영화 속 예수 처형을 요구했던 사람들은 ‘증오스런 유태인들’이 아니라 ‘눈먼 군중들’로 읽어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보인다.
이 작품의 스타일에서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클로즈 업이다. 예수의 고통을 화면 가득 확대해서 들이대는 이 영화의 클로즈업은 관객의 대리 체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종교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 영화의 끔찍한 ‘폭력 묘사’가 용인될 수 있다면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쇳조각을 매단 채찍에 툭툭 뜯겨져나가는 예수의 살점이나 손바닥 한가운데 굵은 못을 박을 때 터져나오는 핏줄기를 그대로 비춰내는 극사실주의적 장면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센세이셔널리즘의 혐의를 벗어난다. 이 영화는 그저 예수의 고통을 이해하라고, 또 동참하라고 외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