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씨는 “동물의 몸통은 다이아몬드형”이라고 말하고는,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동물 그리는 법을 설명했다.

작가는 독자의 선입견에 도전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을 시작으로 ‘지옥의 링’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남벌’ ‘천국의 신화’ 등 대작 목록을 쌓아온 이현세(48)는 커다란 서사의 세계를 줄기차게 고수해 온 대표적인 스토리 만화가다.

그런 그가 ‘이현세의 동물 드로잉’(다섯수레 출판사)이란 책으로 새로운 면모를 드러냈다. ‘만화 이야기꾼’으로서의 이미지를 벗고 오직 그림으로만 표현한 이현세의 세계가 이 작품 속에 있다. 동물을 그리는 방법을 안내하는 동물화 입문서다. 선(線)과 동작 표현의 기본 중 기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수많은 개와 말을 그렸다. 그림의 대상이 개와 말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수백여점의 그림 중 어느 것 하나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게 없을 만큼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펜과 연필의 선을 마음껏 살린 그림 속 동물들은 컴퓨터 만화가 흉내낼 수 없는 역동성과 생기로 가득 차 있다. 이씨는 “응용 분야가 다양할수록 기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 동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동물의 골격이나 근육을 묘사한 그림을 볼 때는 마치 의학서적을 읽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실제로 그는 동물을 그리기 위해 해부학 서적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동물을 잘 그리려면 동물의 체형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며 “직립보행하는 인간과 달리 네 발로 걷는 짐승의 체형은 대부분 다이아몬드형”이라고 설명했다.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사랑스러운 동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만화가 아닌 영화 ‘에일리언’에서 악마적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괴물마저도 모두 동물의 체형을 만화적으로 응용해 만든 캐릭터들입니다. 포켓몬과 디지몬에 등장하는 온갖 몬스터들의 원형도 모두 동물들이죠.” 이씨는 “동물화는 모든 만화가들이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깊이있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분야”라며 “힘들게 그려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책으로 내도 ‘이야기’가 없으니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역설적이게도 이씨가 동물화에 손 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사람을 그리는 것은 만화세계의 무궁무진한 표현분야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말로 동물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림에 곁들여 동물화를 잘 그린 한국의 만화가들과 그들의 특성을 소개한 작가의 에세이도 눈길을 끈다. 그가 중학생 시절 즐겨 보았던 향원의 만화 ‘투견’은 약간 의인화하면서도 사실적 묘사가 특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동경4번지’의 손의성은 굵은 선으로 북북 긁듯이 그려 박력과 멋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고우영은 거친 선과 터질 듯한 근육의 정확한 표현이 일품이었으며, 서정철의 동물화는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특징인데 자신보다 10배 이상 더 꼼꼼하게 그렸다고 평가했다.

기본에 곁들여 이들 작가와 그림들을 소개한 것은 결국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요즘 작가들 중에는 사람 캐릭터는 비교적 개성있게 그리면서도 동물은 사진 보고 적당히 그리는 이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대 교수로 만화를 가르치는 그는 학생들을 동물원에 보내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제자들이 그린 동물화 일부를 이 책에 소개했다.

이번 책은 10년으로 계획된 그의 동물화 대전집 작업의 시작이다. 그는 “가을에 고양잇과 동물화를 한 권 더 낼 것”이라며 “최소한 1년에 2권씩 총 10년간 동물화 그림책을 낼 생각”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