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한번도 야무지게 마음먹은 적도 없건만, 나는 어쩌다 영어·독어·불어를 공부해야만 했다. 비록 상황에 밀려서 하기는 했지만, 여러 언어를 하다 보니 나름대로 재미가 붙었다. 특히 언어의 기본적인 구조를 알게 해주는 문법을 나는 좋아한다.
독일어의 형용사 어미는 왜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왜 독어에 있는 관식구가 불어에는 없고 단지 서술적으로만 표현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혼자 답하며 마구 흐뭇해 한다. 한국어와 이들 언어와의 차이점이나 공통점을 생각하면 더 흥미진진하다. 그 때는 인간의 보편성이나 문화적인 차이까지 혼자 들먹이며 흥분한다. 그런데 한국어와 서구 언어를 비교하다 보면 이상하게 표현의 문제에 집착하게 된다. 한국어의 이런 표현을 불어로 독어로 혹은 영어로는 어떻게 할까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밥알이 곤두서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한다. 극도로 긴장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는 말이다. 서구에서야 밥을 우리처럼 주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들한테 밥알이 곤두설 수는 없고 무언가 다른 표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표현도 이 말과 같은 긴장감을 주기는 힘들 것 같다. 이런 정도의 표현이 나오려면 아주 예민한 사람이라 보통의 일을 극대화하던가, 보통의 사람이 극대의 긴장감을 겪든가, 예민한 사람이 극대의 긴장을 경험하든가 셋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이런 표현이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상황이 내게는 예사롭지 않다.
(최연순·출판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