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작곡가이자 문화평론가인 황문평(黃文平·본명 황해창·84)씨가 13일 오전 11시50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0년 황해 해주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황씨는 어려서부터 작곡가 안기영 선생 집안과 가까워 자연스레 음악과 친숙해졌다.
작곡가 나운영(93년 작고)씨와는 동네 친구 사이이기도 했다.
43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제 말기 ‘노래 지도원’으로 뽑혀 일하는 바람에 광복 후 반민특위에 나가 자술서를 쓰기도 했다.
48년 한국무대예술원 음악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작곡활동을 시작한 그는 ‘빨간 마후라’, ‘꽃 중의 꽃’, ‘호반의 벤치’ 같은 영화·드라마 주제곡만 300곡 가까이 작곡했다.
뮤지컬 곡도 600곡에 이른다. 43년 잡지 ‘조광(朝光)’에 ‘묘향산 보현사’라는 시를 투고해 당선되기도 했다.
‘글을 평이하게 쓴다’고 예명을 ‘문평(文平)’으로 정한 그는 우리 대중음악에 남아 있는 일본 가요의 영향을 늘 못마땅해 했다.
그는 생전에 “나는 영화·드라마 주제가는 썼지만 대중가요는 만들지 않았다”며 “나까지 일본식 가요 찌꺼기를 풀어낼 일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대중음악계 아웃사이더’로 불렸다.
황씨는 “‘가요’란 단어조차 일본어이므로 그냥 ‘노래’라고 부르자”고 주장할 만큼 대중음악의 우리 정서를 중요시했다.
그는 공연윤리위원으로 일하던 89년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패티김과 이미자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세우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70년대 초부터 영화인협회 고문을 맡을 만큼 영화계 쪽에서도 많은 일을 했으며, 작고 직전까지 가요평론가협회 명예회장, 참전예술인협회 명예회장,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었다.
‘황문평 작곡집’, ‘노래따라 세월따라’ 등 저서도 10여권에 달하며, 지난 98년엔 대중예술인 78명의 평전 모음 ‘인물로 본 연예사―삶의 발자국’을 내기도 했다.
화관문화훈장을 비롯해 나운규영화상, 대종상, 청룡상, 서울시 문화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장녀 인아(59), 장남 인규(57), 차남 원규(55)씨 등 2남1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8시.(02)3410-6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