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송환’에서 45년간 복역했던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씨는 앓아누운 노모를 찾아가서 수십년 만의 해후를 한다.

카메라는 결국 이해를 위한 도구일 것이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다룬 김동원 감독의 ‘송환’(19일 개봉)은 기나긴 세월의 무게와 피사체의 마음을 함께 찍어내는 데 성공했다. 거기엔 카메라에 찍힌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카메라를 든 사람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송환’은 전국예술영화관 네트워크인 아트플러스가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와 함께 배급하는 첫 영화. 다큐멘터리를 극장 개봉으로 만나기 쉽잖은 상황에서 의미 있는 상영이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간첩으로 남파된 뒤 체포, 투옥되어 수십년 옥살이를 한 북한 공작원들의 삶이라는 논쟁적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감독은 이념이 아닌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의 인본주의적 태도는 애초 주인공으로 염두에 뒀던 엘리트 공산주의자 김석형씨 대신 공작원들을 실어나르는 연락선 선원이었다가 체포된 어눌한 조창손씨를 위주로 찍어낸 데서 그대로 드러난다.

감독은 카메라를 지탱하는 어깨로 질문하고, 세월을 버텨온 등으로 생각하며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중 어떤 질문은 답을 만나고, 어떤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해소된 질문 위로 증폭된 질문이 메아리쳐 울리는 복잡한 풍경 속에서도, 감독의 기본 태도 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과 삶 자체에 대한 예의이다. ‘송환’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영화를 긍정할 수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송환’은 1992년부터 12년간에 걸쳐 800여시간 동안 비전향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촬영한 끝에 세상에 나온 ‘다큐멘터리 대작’이다. 방송국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상계동 빈민촌 철거 현장을 접한 뒤 충격을 받고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삶을 선택한 김동원 감독은 그간 ‘상계동 올림픽’ ‘행당동 사람들’ 등을 내놓으며 국내 독립영화계를 이끌어 왔다.

시종 ‘장기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감독은 어차피 불가능한 객관의 허상으로 도피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힌다. 반공주의자였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포함, 개인사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감독은 “북한 식량난 책임은 불가침 조약 체결을 거부하는 미국에 있다”고 힘주어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특정 메시지를 위해 영화 장면을 의도적으로 재구성하지도 않는다. 북한에 우호적이었다가 7년간 북한을 드나들며 생각을 바꾼 일본의 저널리스트가 “북조선은 원래 사회주의의 목적을 잃어버린 지 오래”라고 비판하는 내용이 중요하게 삽입되어있다.

감독은 장기수들을 영웅시하지 않는다. 장기수들이 납북자 가족들과의 만남을 거부하며 “납북자가 어디 있어?”라고 짜증내는 장기수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것도 그 하나다. 그는 스스로 “독립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북한에서 나 같은 자유주의자는 살 수 없을 것이다”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때로는 초점을 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송환’의 흔들리는 시선은, 그러나 사실 이 영화의 진짜 가치를 담보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는 북으로 송환된 이후 “수령님과 장군님의 충직한 전사이자 태양의 아들들”로 영웅 대접을 받는 장기수들이 옛 군가를 힘차게 부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잡는다. 화면엔 “선생들은 어쩌면 앞으로 남한에서보다 더 힘들게 스스로의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긴장감을 주던 투쟁의 대상이 눈앞에 없고, 이젠 스스로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는 감독의 말이 깔린다. 이어 노래하는 조창손씨 얼굴에서 화면이 정지하며 ‘선생님’을 ‘할아버지’로 바꿔부르는 마지막 내레이션이 흐른다. “조 할아버지가 날 아들처럼 생각하신다는 말에 별 해드린 게 없어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이 이 작품을 마칠 수 있게 한 힘이었다. 조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인간을 진정 그리워하는 영화가 몇이나 되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