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200만원을 주고 얻은 경주의 집 앞에서 산책하고 있는 네 식구. 왼쪽부터 주느비에브, 마농, 세바스찬 그리고 화가 아버지 장이다.

열여섯 살 팬터마임 배우 세바스찬의 가족은 ‘유목민’이다. 고향은 캐나다 몬트리올이지만 그곳을 떠난 지 벌써 8년째다. 헝가리·루마니아를 거쳐 터키와 시리아·요르단에서 살았고, 다시 인도와 싱가포르·말레이시아를 지나 태국·캄보디아·몽골·중국 등 지금까지 19개 나라를 떠돌았다. 현 기착지인 한국에는 인천항을 통해 석 달 전 들어왔다. 경북 경주시 충효동 재동4길 5호가 이들이 다시 둥지를 튼 보금자리. 대문 옆에는 이렇게 문패를 달았다. ‘캐나다 판토마임 극단(CANADA PANTOMIMA)’.

세바스찬의 엄마 마농이 20년 경력의 베테랑 팬터마임 배우다. 두 살 위의 누나 주느비에브 역시 마임을 한다. 흰 구레나룻이 멋진 아버지 장 앙투안느 드메르씨는 화가. 그림을 그리는 틈틈이 공연에 필요한 무대장치와 조명 설치를 도와준다.

마농과 장 부부가 세계 여행을 시작한 건 두 아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이었다. 극장에서 연극을 보다 마농을 만난 장은 “내게 요트 한 척이 있는데 7년 동안 함께 바다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는 말로 청혼을 했다. 결혼식은 따로 없었다. 9m 길이에 2.5m 폭의 요트 ‘트라이스타’를 타고 지중해를 향해 떠난 것이 1981년. 항구에서 항구로 이동하며 거리 공연을 했고, 그림을 그려주고 마임을 공연하고 얻은 작은 수익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활달한 성격의 마농. 시간이 갈수록 ‘떠돌이’ 생활이 더욱 좋아진다는 그다.

맏딸 주느비에브는 사이프러스 섬에서 태어났다. 세바스찬은 카나리아 군도를 항해할 때 배 안에서 태어났다. 해적을 만난 적은 없지만, 대서양을 지나 스페인으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네 식구가 모두 죽음 직전에 간 적은 있었다. “주느비에브가 세 살, 세바스찬이 5개월 됐을 때예요. 열여섯 시간 동안 사나운 파도에 휩쓸려 표류했는데 무슨 일에든 대범하고 침착한 장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걸 보고 이제 죽었구나 했어요. 물론 우리 여행의 잊지 못할 최고의 추억입니다.”

잠시 몬트리올에 정착했다가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여행길에 오른 건 “안주해 사는 것의 지루함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덟 개의 가방(지금은 50개가 됐다!)을 들고 다시 세계로 떠났다. 7년을 함께했던 1946년산 보트 트라이스타는 이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으므로 이번엔 비행기와 기차·버스를 이용했다.

일단 한 나라에 정착하면 평균 6개월에서 1년을 살았다. 생활은 캐나다 정부에서 장에게 주는 연금과 팬터마임 공연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이어갔다. 이제는 마농 혼자서 하는 공연이 아니었다. 엄마에게서 춤과 바이올린을 배운 주느비에브는 어느새 깜찍한 여배우로 자라 있었고, 상자·선반 같은 소품을 곧잘 만드는 세바스찬 역시 공연에 없어서는 안 될 배우이자 스태프가 되었다.

여행 때문에 받을 수 없는 학교교육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여행은 두 남매에게 다양한 나라의 언어와 풍습, 문화에 대한 지식을 안겨줬다. 수학은 대학에서 생물을 전공한 마농이 직접 가르쳤고, 그 밖에 필요한 지식은 그때그때 교사를 구해 가르쳤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좁은 의미의 지식을 쌓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는 기쁨과 두려움! 쌀 한 톨이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지혜롭고 느긋하게 이겨내는 방법을 여행은 선물하지요. 주느비에브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뭔지 아세요? 각 나라에서 만나 사귀었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랍니다.”

마농은 한국의 산이 아름다워서, 장은 동네 이웃들이 가끔 끓여다주는 두부찌개가 맛있어서 오래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4월 12일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인들에게 처음 자신들의 팬터마임을 선보인다. “소유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자유를 얻지요. 물론 아이들이 원하면 언제든 돌아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