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밤골’이라 불리는 서울 신림10동 무허가주택 밀집지역. 이곳에는 전기료를 제때 못내 단전이 되는 바람에 매일같이 칠흑 같은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평 남짓한 달동네 사글셋방에서 아들(30)과 함께 살고 있는 한모(58)씨도 새해 첫날을 TV, 라디오도 켜지 못한 채 촛불 하나로 버텼다. 일당 2만5000원을 받는 공공근로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에게 체납된 전기료 40만원은 큰 부담이다. 다행히 최근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전기요금 유예조치로 전기 공급이 재개됐지만, 언제 또다시 끊길 지 불안하기만 하다. 한씨는 “쌀도 다 떨어져 가는데 전기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한씨처럼 전기료를 내지 못해 단전 조치된 가구가 100가구 중 4가구 꼴. 7일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3개월 이상 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 조치된 가구 수는 작년 한해 동안 전국적으로 63만4000가구로 2002년의 48만7000여가구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특히 정부가 작년 하반기부터 월 100㎾h 이하를 사용하는 서민층에 대해 단전 조치를 유예해준 건수가 35만건(금액기준 65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단전 대상 가구는 100만 가구에 육박한다. 또 전기 공급가구 대비 단전 가구 수를 나타내는 단전율로 보면 2002년 2.95%에서 2003년 3.78%로 0.83%포인트 늘어났다.
이처럼 전기료 체납이 급증한 원인은 전반적인 경기 위축으로 실업률이 늘고 신용불량자와 가계부실 등이 겹쳐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여간 단전 조치는 각종 안전사고를 불러왔다. 촛불을 사용하다가 불이 나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지난 2월 전남 목포시 연산동에서는 장애인부부가 9만여원 정도의 전기료를 내지 못해 단전조치되자 촛불을 켠 채 잠들었다가 불이 나 부부 모두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산자부는 이 같은 인명사고가 잇따르자 단전 유예 대상을 100㎾h 이하 사용자에서 모든 주택용 전기사용자로 확대하고, 단전 유예기간도 2월 말에서 이달 말까지 한달간 연장키로 했다. 또 지난 1일부터 월 100㎾h 이하의 전력을 사용하는 영세서민에 대해 평균 전기요금을 12% 인하하고,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는 20% 할인혜택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영세민들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보건사회연구원 노대명(魯大明) 자활지원연구팀장은 “단전·단수조치는 나빠지는 경제사정과 무관하지 않다”며 “사용량만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단전조치대상 가구에 대해 사회복지요원들이 방문조사를 해 체납원인을 따져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등 산자부와 복지부 간의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