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사설을 쉬운 우리말로 고치고 영역한 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 연구팀들. 왼쪽부터 고은미, 장미영, 유승 연구원, 최동현 군산대교수(책임연구원), 권은영, 허마인(Hermine E.E), 윤영옥, 박승배, 이수라 연구원

“정주영이 부러울까 이병철이 부러울까.” 흥보가 박타는 대목에 나오는 부자 ‘석숭이’와 ‘도주공’이 정주영·이병철로 바뀌었다.

소리의 고장 전주에서 판소리 사설을 일반화·현대화하면서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소장 이정덕)가 판소리 다섯 바탕을 쉬운 우리말로 개작, 이 중 흥보·수궁·적벽가를 5일 영문 자막과 함께 시연한다. 춘향·심청가는 이미 작년 5월 시연회를 열었다.

“유네스코에서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자랑스런 판소리를 대중화, 세계화하는 작업입니다. 판소리의 예술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한자어와 고어를 알기 쉬운 지금의 말로 고치고 번역하는 겁니다.”(박승배 연구원)

2002년8월 한국학술진흥재단 후원으로 시작된 이 작업의 공식 명칭은 ‘판소리 사설의 채록 정리 주석 번역 및 실용화시스템 개발에 관한 연구’. ▲구전 사설을 문자로 기록하면서 주석을 달고 ▲현대 우리말로 고치면서 ▲영문으로 번역한 뒤 ▲영문과 한글 자막으로 송출하는 네 과정을 수행해왔다.

연구 개발 과정에는 국문·영문학자, 영어 원어민 교수, 기계공학자까지 모두 21명이 참여했다. 소리마다 3~4개 바디(유파)별로 다섯 바탕에 걸쳐 모두 18개 바디를 정리했다. 매 바디 원고지로 원문만 80~800장, 주석까지 합쳐 700 ~2000장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그 자체로 완전한 예술인 판소리 사설을 쉬운 우리말·영어로 고치되, 깊은 뜻을 살리면서, 고저 장단, 음률까지 맞춰야 하는 일은 모두에게 힘들었다고 한다. 유승 연구원은 “고어, 한자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일주일 넘겨 궁리한 구절이 한 둘이 아니고, 네 단계 작업과정에서 손발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말 개작을 맡은 장미영 연구원은 전북도립국악원에서 직접 소리를 익히며 이곳 교수들의 자문을 받았다.

연구팀은 시연회 뒤에도 다섯 바탕을 계속 보완해 오는 7월 최종 성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책임연구원인 최동현(52) 군산대교수는 “연구개발 결과를 사회와 공유해 젊은이와 외국인들이 판소리를 쉽게 듣는 기회가 많이 생기도록 하겠다”며 “판소리 사설 수정·보완은 이제 시작으로 올해 이후에도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시연회는 오후7시 전주 전통문화센터에서 열린다. 스크린에 영어 자막이 뜨는 가운데 전북도립국악원 김연 교수와 장문희 창극단원이 각각 김연수 바디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현대어)과 박봉술 바디 적벽가 중 ‘군사 설움 대목’(원본)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