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안 끝났으면 좋겠어요! 너무 재밌어요.” “히히, 호랑이가 두 살이래. 애기네….”
지난달 26일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는 서울 중계본동과 신림10동 공부방 어린이들의 세상이었다. 좁은 공부방을 벗어난 아이들은 아직 바람이 매서운 늦겨울 추위도 잊고 롤러코스터에 올라 “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우주관람차와 스카이웨이 등 놀이기구를 하나라도 더 타려 줄을 서 있는 동안엔 단 1초라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서서 종종걸음을 쳤다. 호랑이 사자 곰 등 맹수들이 살고 있는 우리에 버스를 타고 들어간 ‘사파리’에선 호랑이가 창가에 다가설 때마다 아이들이 한쪽으로 몰려 버스가 뒤뚱거렸다.
중계본동 7살 소녀 지수(본지 1월 1일자)도 언니·오빠들 틈에서 모처럼의 나들이를 즐겼다. 대부분 아이들처럼 지수에게도 놀이공원 방문은 처음. 지수는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리프트를 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어, 할머니들도 오셨네.
우리 할머니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말했다. 할머니 윤공순씨와 단둘이 사는 지수는 ‘오즈의 마법사’, ‘춤추는 비행기’, ‘우주관람차’ 등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분홍색 작은 수첩에 기구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뭐 할거냐고요? 나중에 할머니한테 얘기해 드릴거예요.”
신림동 아이들도 들뜨긴 마찬가지. ‘푸른울타리’와 ‘햇살공부방’, ‘작은나무들의 집’ 아이들은 출발시각인 9시보다 훨씬 이른 7시40분부터 공부방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한 어린이는 출발 1시간 전에 나오고서도 “늦을까봐 빵만 먹고 나왔다”고 말했다.
즐겁게 뛰어 놀면서도 아이들은 함께 오지 못한 아빠 엄마를 생각했다. 햇살 공부방의 한 어린이는 “나중에 꼭 가족들과 함께 오겠다”고 감상문에 써 놓았다. 중계본동과 신림10동 아이들의 ‘화려한 외출’은 ‘우리이웃을 생각하는 나눔 네트워크’(약칭 ‘우리이웃 네트워크’)에 참가한 삼성에버랜드가 어린이 90여명을 초청해 마련됐다.
김민수 삼성에버랜드 과장은 “평소 주말 나들이 다니기가 힘든 어린이들의 ‘작은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자리”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들이 기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금으로 지붕·보일러 고쳐 따뜻한 겨울난 신림 10동…
익명 독지가 치료비 덕분에 지긋지긋 관절염 싹 가시기도
우리이웃의 삶이 변화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는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그늘진 삶을 살아온 이웃들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도움이라도 모이면 큰 힘이 된다. 어려운 노인들이 불편하지 않게 살아가고, 어린이들이 가난 때문에 꿈을 접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이웃 네트워크’에 참가한 이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요즘 신림10동 밤골은 지난 1월 우리이웃 보도 이후 동사무소에 모인 200여만원의 성금을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다. 동사무소에선 지붕을 고치지 못해 비가 새는 집에 살던 밤골 이봉순(76)씨의 지붕을 고쳐 줬고, 보일러가 낡아 추운 겨울을 보내던 6가구의 보일러도 수리할 수 있었다.
대문 앞 개울로 미끄러져 어깨를 다친 임태형씨 집 앞에는 18m짜리 난간도 설치했다. 유원형 통장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아보긴 처음”이라며 “그동안 불편했던 것을 하나 둘 고칠 수 있어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매일 식사를 해결하는 중계본동 ‘평화의 집’ 부엌에는 50인분 전기자동밥솥이 들어왔고, 싱크대에는 순간온수기를 달아 뜨거운 물을 마음놓고 쓸 수 있게 됐다.
문미라 사회복지사는 “자원봉사자 아주머니들이 밥을 여러 번 할 필요가 없어져 너무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고려수지침요법학회에서도 매주 금요일 평화의 집을 찾아와 진료를 하고 있고, 라마다호텔 직원들도 호텔 내에 자체 모금함을 설치해 매달 성금을 들고 찾아오기로 했다.
이름 없이 남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도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 서울 양재동 산마을 비닐하우스촌 이영순(58·본지 1월 6일자)씨는 악성 류머티즘성 관절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씨는 요즘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서울 청담동의 양한방 협진 통증클리닉인 ‘안아픈세상 한의원’에서 주사와 물리치료 등을 받고 있다. 이씨는 “이제 자다가 허리와 무릎이 아파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누가 자신을 도와주는지 알지 못한다.
이씨를 도와준 신모(54)씨는 지난 1월 이씨가 처음으로 병원에 가던 날 집으로 찾아와 함께 병원에 데려다 줬을 뿐 다음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병원측은 “진료비는 10회분이 미리 완납이 돼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몸이 아픈 분들에겐 직접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돼 병원에 모셔다 드린 것”이라며 “다 나으시면 다른 분을 도울 것이고, 치료가 더 필요하면 또 돕겠다”고 말했다.
신림10동 성민사회복지관에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후원자가 134만원이 넘는 327권 분량의 어린이 도서를 보내왔고, 또 다른 후원자도 180만원 상당의 물품을 보내왔다. 전남 목포의 독거노인들을 돕고 있는 ‘목포 노인의 전화’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40대 남성이 전화를 걸어와 “중학교 1학년인 아들에게 남을 돕는 마음을 가르치고 싶다”면서 7만원을 입금하고 “아이가 돈을 모아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방과 후 시간을 보내는 공부방의 어린이들도 배고픔에서 벗어나고 있다. 수퍼마켓에서 사온 음료수와 빵으로 간식을 때우곤 했던 푸른울타리 교실은 요즘 돈가스·만두·우동 등으로 메뉴가 다양해졌다.
전북 임실의 냉동식품 전문회사 ‘나래식품’ 신동섭(39) 대표는 별명이 ‘만두가게 아저씨’. 신씨는 지난 1월부터 성민복지관과 중계복지회관에 정기적으로 만두를 대주고 있다. 그는 아예 냉동고를 사다 주고 “언제든 만두가 떨어지면 연락을 달라”고 해, 거의 매주 만두 7~8박스씩을 보내주고 있었다.
신씨는 “자식 키우는 사람이 아이들 배 고프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참 아프더라”며 “맛있게 먹어 주니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