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만에 꽃가게에 들렀다. 내 주머니 사정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터라 생각만 간절했을 뿐 미뤄 온 꽃꽂이다. 꽃값이 만만찮다 싶어 망설이고 있는데, TV화면으로 대학교 졸업식 장면이 비쳤다.
아들의 검정사각모에 가운을 걸쳐 입은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주름투성이 살갗이 싫지 않아 보이는 건 웃음 뒤에 가린 공이 장하고 빛나 보여서일 것이다.
어떤 어머니는 장애를 가진 자식을 위해 휠체어를 밀며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견뎠을 것이고, 어떤 아들은 구두닦이로 밤업소를 돌며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배움을 위해 몸담았던 학교가 그들에게 따뜻한 보호구역이었다는 사실이다.
낙관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경기 전망 앞에서 청년실업자가 최고 수치인 10%로 치닫고 있다. 이런 현실이고 보니 애써 이룬 형설의 공에 선뜻 축하인사를 건네기가 쉽지 않다.
졸업은 끝이 아니다. 생의 한 단락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마냥 가슴 뿌듯해할 여유가 없다. 졸업에 대한 감회가 예전처럼 아름답고 벅차기만 하지 못한 건 눈앞의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길이 없으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눈길 위에 땀으로 첫 발자국을 찍는다면 그 길이야말로 자신이 주인이다.
질곡을 뚫고 과녁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가는 젊은이들을 상상해 본다. 물론 졸업 후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 아래 예정된 직장에서 시작한 사회생활과 다소 처지고, 밀린 경우의 입장은 출발선 자체가 다를 것이 확연하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고 영원히 도태되거나, 정점에 못 미치리란 법은 절대 없다.
젊음은 불가능을 꿈꿀 수 있기에 아름답다. 이젠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절망이 엄습하는 순간에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저들의 아침 햇빛을 향해 수천만송이 꽃을 바친다. 젊음을 담보로 한 투자만큼 튼튼하고 미더운 것은 다시 없음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체험한 한 선배의 충고를 선물로 받아 준다면 크게 기쁠 것이다.
(이승필 71·시인·경기 김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