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반(反)예술, 이른바 안티 아트의 선봉이었던 마르셀 뒤샹은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의 얼굴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덧그린 ‘작품’을 발표했다. 그가 붙인 제목 ‘LHOOQ’는 프랑스어로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지녔다’는 뜻이었다. 1920년대는 이처럼 무정부주의적이고 직관적인 장난이 주를 이루는 다다이즘이라는 미술 풍조의 전성기였다. 예술이라고 봐주기 힘든 경계까지 육박해 작품마다 역설과 냉소, 풍자가 넘쳤다.

▶그 시대에 독일 쾰른 경찰서장이 막스 에른스트를 비롯한 다다이스트들을 사기 죄로 잡아들이려 했다. 죄목은 이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늘어 놓고 전시회 입장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에른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다다이즘이 예술과 관련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사람들이 다다이즘과 예술을 혼동한다면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예술 아닌 예술’들은 엄연한 기성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자바체프와 드 기유봉 부부는 197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북쪽 목장지대 40㎞에 걸쳐 ‘달리는 울타리’라는 작품을 세웠다. 캘리포니아의 완만한 언덕을 동서로 가로질러 뻗은 높이 5.5m짜리 흰색 나일론 천의 행렬은 기품 있게도 ‘대지미술’로 불렸다. 이런 설치미술을 두고 혀를 차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적어졌다.

▶이탈리아의 한 설치미술가가 영국 런던 복판에 사방이 유리로 된 공중화장실을 지었다. 특수유리로 만들어 안에서는 바깥이 훤히 보이지만 밖에서는 거울로 반사돼 들여다 볼 수 없게 돼 있다. 작가는 볼 일을 보면서도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빠짐없이 구경하라는 뜻에서 이 현대미술 작품의 제목을 ‘한 순간도 놓치지 말라’라고 붙였다. 하지만 아직 제목처럼 배포 좋게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뒤샹은 1917년 소변기를 뒤집어놓고 조각작품이라고 주장했다. 2000년엔 테이트 현대미술관에 전시되던 이 ‘작품’에 행위예술가들이 오줌을 눈 일도 있었다. 원초적 배설행위와 작품을 연결짓는 현대 작가들의 짓궂은 발상은 혐오스럽다기보다 쓴 웃음부터 짓게 만든다. 투명 화장실은 유달리 스트리킹이 잦은 영국 사람들의 노출증을 풍자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화장실이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호기심과 즐거움을 줬다면, 예술작품의 소임은 충분히 한 것 아닌가 싶다.

(오태진 논설위원 tjh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