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일본에 ‘이기면 관군(官軍), 지면 산적(山賊)’이라는 속담이 있었다. 밖으로 내세운 명분이나 의리, 정의와 관계없이 전쟁에 이긴 쪽은 관군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반면, 진 쪽은 산적으로 몰려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지금부터 500여년 전에 있었던 일본의 속담을 이 시점에서 거론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가 판에 찍어낸 것처럼 산적과 관군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산적의 만행이나 죄상은 낱낱이 드러나거나 과장되는 반면, 관군의 폐해는 거의 없는 것처럼 발표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차(車)떼기’나 ‘이적료’를 비롯하여 불법적인 정치자금의 모금과 착복 등 패배한 쪽은 머리를 들지 못할 정도로 그 치부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쪽은 개인 차원의 비리 외에는 아무런 불법행위도 없었던 것처럼 되어 큰소리치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데서 산적의 비애와 관군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산적의 비애는 그것만이 아니다. 패배한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재기를 도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중지란에 빠져 패전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기 바쁘다 보니 보는 이로 하여금 환멸을 느끼게 하고, 이것이 더욱 재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동안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이로 인해 더욱 지리멸렬하는 악순환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관군의 위력이 아무리 강대하다고 할지라도 한시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두 개의 잣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관군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에게는 추상처럼 엄한 잣대를, 자신에게는 솜털처럼 부드러운 잣대를 들이댈 수는 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관군의 지위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역사의 심판은 말할 것 없고, 새 관군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동일한 잣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군의 지위를 이어받은 누군가는 산적일 수도 있고, 관군과 한패일 수도 있다. 만약 산적이 관군으로 되었다면 자신이 당했던 것 이상으로 옛 관군의 폐해를 들춰내려 할 것이다. 박탈당한 과거에 대한 보상 심리가 발동, 한풀이를 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군의 한패가 자리를 물려받았다고 해서 옛 관군의 잔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새 관군으로서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옛 관군을 엄한 잣대로 재단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는 새로 관군이 된 집단이 두 개의 잣대를 비치하고 대상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식이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나타났던 전임자에 대한 비판과 폄하, 그리고 반대편에 대한 칼 같은 사정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관군이야 그 지위가 주는 즐거움이 있고, 산적이야 언젠가는 관군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경우는 다르다. 관군의 폐해와 산적의 약탈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뿐이다.
따라서 국민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관군은 ‘공정한’ 수사였다고 강변하기에 앞서 한 개의 잣대만을 내놓아야 할 것이고, 산적은 ‘불공정’ 수사를 비난하기에 앞서 약탈행위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관군과 산적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차원에서 대타협을 모색하는 것이 정치 발전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연 경남대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