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향해 열린 대학,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국제적 리더를 길러내는 법대를 만들고자 합니다.”
안경환(安京煥·56) 서울법대 학장이 ‘보수적이고 전통에만 안주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대학 분위기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안 학장 부임 이후 서울 법대 신규교수 임용에 파격이 잇따랐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의 양현아 교수가 법대 사상 최초의 여성교수로 임용된 데 이어 올 신학기부터는 모두 4명의 여성이 법대 강단에 선다.
“여성교수의 임용에 반대가 많았죠. 심지어 법대 여학생회마저 ‘여성을 특별한 시각으로 본다’는 이유로 반대할 정도였으니….” 학생들과 동문들마저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는 학장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해 여성교수 임용을 이뤄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게 늘어난 것에 비춰보면, 오히려 뒤늦은 셈이죠. 늘 사회변화의 끄트머리에 있던 대학도 이제는 사회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변해야 합니다.”
올해부터 재미동포 2세인 그레이스 강(여·39), 중국 북경정법대학의 리주첸(33)과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의 페터 길레스(65) 등 3명의 외국인 교수들이 영미법과 동아시아법·대륙법을 각각 강의하게 만든 것도 그의 의지로 관철됐다.
최근 안 학장은 1급 시각장애인 최민석씨의 서울법대 입학을 결정, 세간의 관심을 또 한 번 모았다.
평교수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진보적 학자로 알려져 온 그는 2000년까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으로 일했으며, 현재도 국가인권위원회 고문과 아름다운재단 이사로 활약중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학계는 한편으론 대중과의 거리가 너무 멀고, 다른 한편으론 지성계에서 소외당하는 후진적 단계에 머물러 있어요.법학자는 법이 사회에 대해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져야죠.”
안씨는 활발한 사회할동 외에도 1년 가까이 조선일보에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법률에세이를 연재했을 정도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조예가 높다. 학창시절 문학에 심취했던 그는 한때 소설가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장남이었던 그는 집안의 반대로 문학가의 뜻을 접고 법대에 진학한다. “제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지금처럼 어느 대학에 진학하느냐에 목매지 않고, 이문열이나 황석영씨 같이 모든 것을 걸고 문학에 정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입니다.”
요즘도 그는 신문에 나오는 신간소개를 빠짐없이 확인, 한달에 20여권의 문학서적을 탐독한다. 그러다 보니 잠자는 시간은 하루에 4~5시간이 고작.
대학원 시절 유신에 반대하는 논문을 쓴 뒤, 고시의 길을 포기한 안씨는 1975년 대학원 졸업후 직장생활을 하다 1980년 뒤늦게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석사학위, 1985년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1989년 서울법대 교수가 됐다.
1995년 ‘법과 문학사이’를 펴낸 이후, ‘셰익스피어, 섹스어필’,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 등 법과 문학을 오가는 에세이를 써온 안씨는 ‘정통문학에 도전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처럼 법과 일반사회의 간격을 좁히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며 손사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