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택

국회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비준되었다. 마지막 순간에 물리적인 투쟁을 피하여 국회가 투표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이제 무거운 짐을 벗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당초 FTA를 추진할 때 그 충격을 우려, 비교적 교역 규모가 적은 칠레를 대상으로 시험 삼아 추진해 보고 난 후 이를 점차 확산하자는 구상을 했었다. 한·칠레 FTA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세계 최초의 협정으로서 우리 상품이 중남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우리 교역 규모 중에서 칠레가 차지하는 비중이 1%에도 못 미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번 협정으로 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느 한 외국인 교수는 “한국이 칠레와 FTA를 체결한 것은 진기(funny)하다”고까지 표현했다.

우리가 칠레와 협상을 시작한 것이 1999년이므로 시범 케이스에만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을 소비했다. 그동안 칠레는 30개가 넘는 국가와 FTA를 맺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늦게 FTA를 시작한 중국도 아세안과 FTA를 체결하기로 합의했고, 인도와 태국도 FTA를 맺었다.

선진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유럽연합(EU)은 자유무역은 물론 통화까지 같이 쓰는 실질적인 통합을 하고 있으며 내년까지는 유럽 전역의 25개국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미국은 캐나다·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미주지역 전체의 40개국을 대상으로 한 FTA를 추진하고 있고 최근에는 호주와 FTA를 맺었다.

우리가 FTA를 맺지 못해 입은 손실은 적지 않다. 1990년대에 우리나라 상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3.7%였으나 지금은 3.1%로 떨어진 반면, 멕시코는 미국과의 FTA 덕분에 점유율이 6.1%에서 11.6%로 두 배 가량 늘었다. 세계 무역 순위에서도 우리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동안 멕시코는 20위권에서 12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이달 초 일본을 방문, 정부 경제계·학계의 인사들을 만났는데 의사 결정이 느리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FTA를 위한 발빠른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일본은 현재 다섯 나라와 협상을 하고 있다.

돼지고기와 오렌지를 수입하고 있는 멕시코, 바나나 수입물량의 80%를 차지하는 필리핀은 물론, 심지어 대표적인 쌀 수출국가인 태국과도 FTA를 추진하고 있다. 하나하나 민감한 품목이 아닐 수 없다. 협상에 난항이 없지는 않겠지만 협상시한을 1년으로 잡아 금년 또는 내년 안에 마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경제산업성과 같은 정부 조직을 총력적인 FTA 추진체제로 개편했다.

우리나라가 지금 협상 중인 FTA는 지난해 말 시작한 싱가포르와 일본 두 나라뿐이다. 또다시 칠레와의 협정처럼 긴 세월을 소모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1, 2위 교역 상대국인 중국이나 미국과는 FTA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얽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손을 놓고만 있어서도 안 된다. FTA 체결 이전이라도 중국과의 산업협력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특히 미국과 투자보장협정을 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이번 국회 비준으로 우리도 세계 경제의 외톨이 신세를 면했다고 기뻐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다. 세계 각국이 FTA라는 경주에서 이미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판에 우리는 이제야 겨우 걸음마를 뗀 것이다.

(현정택·인하대 교수·국제통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