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진보 사회학자로 1984년 산업사회연구회의 설립을 주도했던 김진균 교수.

지난 30여년 동안 학계를 주도해 온 ‘4·19세대’이자 진보 학계의 ‘맏형’인 김진균 (金晋均·67) 서울대 명예교수가 14일 오전 9시4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 교수는 1980년대와 90년대 진보적 지식인들의 대표와도 같은 존재였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해직된 그는 후배들과 함께 ‘상도연구실’을 열었고, 이를 토대로 1984년 산업사회연구회(현 한국산업사회학회) 설립을 주도해 비판적 사회과학 모임의 길을 열었다.

이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1988~91년)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1992~99년), 민주노총 지도위원 등을 역임하며 학술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왔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김 교수는 1968년부터 작년 2월까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조직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동료 교수와 제자들이 시국 사건으로 끊임없이 구속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참여’의 길을 걷게 됐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사회주의 이론이 발붙일 틈 없었던 시절에 그가 학계에 도입한 ‘계급론’과 ‘민중’ 개념은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를 들여다보는 분석 도구로 자리잡았다.

김진균 교수는 진보적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인간적인 넓이를 지닌 인물이었다. 결혼하는 제자들의 주례를 사양하는 법이 없었으며, 잡혀들어간 운동권 학생들의 신원보증에도 늘 발벗고 나섰다고 한다.

서울대 사회학과의 한 후배 교수는 “김 교수는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포용력 있게 대했던 그릇이 큰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비판과 변동의 사회학’ ‘사회과학과 민족현실’ ‘현대자본주의 노동과정연구’ 등의 저서를 낸 김 교수는 지난 2000년 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학자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정년퇴임 직전에 펴낸 저서 ‘진보에서 희망을 꿈꾼다’와 ‘21세기 진보운동의 기획’에서는 “온갖 질곡과 착취가 펼쳐지는 자본의 전(全)지구적 작용에 대항해 ‘인(仁)’과 ‘서(恕)’를 바탕으로 한 세계적 민중연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강의였던 ‘사회변동론’ 종강 시간에는 “80년대 진보진영 인사들을 만났던 경험을 살려 5년 안에 지식인 운동사에 대한 책을 펴내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유족으로 부인 정혜영씨와 아들 태진·영진씨, 딸 지인씨 등 2남 1녀가 있다. 동생인 서울대 정치학과 김세균(金世均) 교수 역시 진보성향의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8시30분, 영결식은 같은 날 오전 10시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민주사회장(장례위원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으로 치뤄진다. 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민중공원. (02) 760-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