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추구하는 것도 아름다움이요, 종교가 추구하는 것도 하느님이라는 완전한 아름다움입니다. 화가이자 신부로 살아온 제 인생이 결국은 한 길을 향해 걸어온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화가로 활동하며 ‘빛의 사제’란 별명이 붙어다니는 김인중(金寅中) 신부가 ‘화가 신부’ 인생 30년을 맞아 올해 전 세계 8개국에서 9차례의 전시회를 갖는다. 지난 1월 초 시작된 파리 전시회에 이어 벨기에, 한국(3월 10~21일 조선일보 미술관), 일본, 폴란드, 스위스, 콜롬비아, 이탈리아에서의 전시회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성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신부인 그는 1년의 대부분을 수도원 4층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또 미사를 드리며 지낸다. 부여 태생의 김 신부는 원래 미술학도였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복무할 때만 해도 그의 꿈은 화가였다. 대학원 시절, 당시 혜화동에 있던 중·고교생 대상의 소(小)신학교에서 미술 강사로 근무하면서 가톨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성직자의 길을 선택한 어린 제자들에게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신앙에 빠져들면서 성직자의 길이 제 운명이라는 생각이 점점 간절해졌지요.”

60년대 어려웠던 시절, 5남3녀의 장남이었던 그가 그림을 선택한 것만도 부모님들에게 이해받기 힘든 ‘불효’였다. 스위스 유학길에 오른 때가 지난 1969년. 막노동을 해가며 스위스 프리부르그대학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전공보다 신학 수업을 더 열심히 들으며 그림도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갔다. 신학 공부를 하며 만난 신부와의 인연으로 프리부르그에 있는 성 도미니크 수도원에 들어갔다. 1974년 30대 중반의 늦깎이로 사제 서품을 받은 김 신부는 1975년 파리로 건너왔다.

김 신부의 그림은 동양화처럼 여백이 많으면서도, 빨강·노랑·파랑 등 강렬한 3원색을 써서 밝고 환한 빛의 느낌을 안겨다 주는 추상화들이다.

“프랑스에서조차 ‘신부가 그림을 그려봤자 얼마나 그리겠느냐’는 선입견이 많았어요. 그런 고정관념을 뛰어넘기 위해 더 열심히 작품에 매달렸습니다.”

70년대에는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종이 작업만을 해왔다는 김 신부는 80년 이후엔 1년에 2~3회씩 전시회를 열며 왕성하게 화가로 활동해왔다.

김 신부의 남다른 인생은 올 연말쯤 프랑스에서 책으로도 엮어져 나온다. 김 신부의 인생 역정에 흥미를 느낀 병원 원장이자 소설가 장 튈리에씨가 집필을 맡았다.

( 파리=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