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뉴욕 맨해튼 17가 유니언 스퀘어에 위치한 ‘W’ 호텔.

휠체어를 탄 정범진(丁範鎭·미국명 알렉스 정·37) 검사는 화장실에서 호주머니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든 케이스를 꺼내서 들고 나와 이수영(39) 이젠 사장에게 청혼을 했다.

이 사장은 케이스에서 반지를 꺼내 들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예’라고 입을 열었다. 하반신 마비의 중증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검찰청의 부장 검사까지 오른 정 검사와 여성 벤처사업가 이 사장 사이의 순고한 사랑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청혼 당시 무슨 말을 건넸느냐”고 묻자, 정 검사는 “미리 준비해서 말을 했는데 당시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 난다”면서 슬쩍 웃었다.

정 검사와 이 사장은 지난해 6월 첫 이메일을 주고 받은 뒤 8월 이 사장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났다. “첫 느낌이요? 웹사이트에서 본 사진보다 훨씬 예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사람은 열흘 동안 매일 얼굴을 맞댔다.

“데이트를 해서 말을 하면 진짜로 잘 통하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도 있지요. 이 사장은 너무 쉽게 통하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것같아요.” 정 검사가 이 사장을 선택한 이유다.

정 검사는 살인사건을 전담하는 강력부를 거쳐 현재 징역 1년 이하의 범죄를 다루는 부서를 관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검사 생활 10년 만에 부장 검사로 승진, 밑에 60여명의 검사를 지휘하고 있다.

정 검사는 부장 검사가 되기 전 총 30번의 재판에서 27번 이기고, 3번 패했으며, 24번 연속 승소 기록을 보유, 브루클린 검찰총장의 총애를 받고 있다. 정 검사가 승진 후 하는 일은 매일 법정에 가서 부하 검사들에게 재판을 진행하는 방법을 교육시키는 것. 3년 전부터는 한국의 현직 검사들이 와서 미국 재판 제도를 배우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수영 '이젠' 사장

정 검사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1991년 5월. 조지 워싱턴대 법과 대학원 2년을 마치고 여름방학 첫날 19시간 걸리는 텍사스주 댈러스 집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로 목이 부러지고 척수를 상하는 중상을 입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낫겠거니 생각했어요. 사고 후 6주일이내 발가락이 움직이면 신경이 돌아 온다고 해서 매일 발가락을 움직이려고 애를 썼지요.” 하지만 정밀촬영(MRI) 결과 신경이 끊어져서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장애인이 됐구나….”

정 검사는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부모님께 미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 검사는 부모님 앞에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을 흘리는 부모님께 큰소리를 쳤다. “내가 걷지 못하는 것 빼고 못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뉴욕 플러싱에 살 때 브루클린 검찰청으로 출근을 하다가 보면 중간에 공동 묘지가 한 개 있다. 정 검사는 공동묘지를 보면서 “죽어서 한 평짜리 저 관속에 있느니 고생스러워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뉴욕=김재호특파원 jaeh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