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이전을 ‘지배세력의 교체’로 연결시키는 발상은 참으로 수구적이다. ‘지배세력’이라는 말부터가 전(前)시대적 용어다. 서구사회에서 이 용어가 쓰이지 않은 것은 이미 한 세대 전의 일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80년대 후반 이후 사장(死藏)된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 됐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 특유의 용어가 있다. ‘지배세력’은 마르크시즘이 풍미하던 시대의 용어다. 마르크시즘에서 지배세력은 자본가 계급이다. 이 계급이 생산수단을 전유(專有)해서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고, 그 지배는 단순한 계급적 범주를 넘어서서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문화까지도 지배한다는 데서, 계급과 세력이 등식화되어 만들어진 말이다.
마르크시즘에서 지배세력은 자동적으로 착취세력이 된다. 노동자의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서민의 피와 땀과 노고를 탈취한다는, 지극히 적대적이고 투쟁적인 의미가 그 속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말들은 오늘날 전투적인 운동권 학생들조차도 쓰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를 함의(含意)하기엔 너무 빗나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 어느 노동자가 자기는 피지배 세력이고 피착취자라고 생각하는가. 지금 어느 사용자가 자기는 지배자며 착취세력이라고 생각하는가. 언감생심 그런 생각을 갖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인이 지금 우리 사회에 있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층(層) 지워져 있고, 차별화된 층이 있는 것만큼 위층과 아래층이 있다. 문제는 누가 위층에 앉아 있고,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 옛날과 어떻게 다른가이다. 무엇이 어떻게 다르기에 ‘지배세력’이라는 말이 쓰임을 잃어버렸는가.
그 해답은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 무엇인가에서 찾아진다. 마르크시즘이 도도한 물결처럼 흐르고 있을 때의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은 더 이를 것도 없이 자본이다. 그 자본이 지금도 그렇게 무소부지(無所不至)한가. 그보다 더 세고 더 결정적인 생산수단은 없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지식사회(knowledge sosiety)로 명명하고 구체화한다. 이유는 지식이 가장 새롭고도 가장 결정적인 생산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무리 자본이 있어도 지식이 없으면 시장에서 퇴출된다. 반대로 지본이 없어도 지식이 있으면 시장으로 진입한다. 선진사회 최고기업의 CEO들은 모두 최고의 지식인들이다. 빛나는 지식의 소유자들이며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지식의 소지자들이다. 그들은 옛날의 그 자본가계급이 아니다.
우리도 이 지식사회의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는 자본으로서의 삼성전자가 아니라 지식으로서의 삼성전자다. 삼성전자가 생산하고 축적하고 이용하는 지식은 대한민국 정부가 갖고 있는 지식의 총량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이 세상을 바꾼다. 지식이 일자리를 만들고 수십만의 사람들을 고용한다. 지식이 세상을 이끈다. 하지만 창조로 생산으로 세상을 이끌어 갈 뿐, 결코 지배하지 않는다. 그 이끄는 자들을 보고 옛날처럼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지배세력’이라 이름 붙일 수 있겠는가. 그 지식인이 수도를 충청도로 이전한다고 다른 지식인이 되고, 서울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낡은 지식인―교체되는 지식인이 될 것인가.
정확한 용어의 선택이 커뮤니케이션의 원류다. 최고지도자의 용어일수록 더 정확성을 요구한다. 말이 바로 국가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송복·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