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field)가 선생이다!’ ‘현장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책상과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적거리기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뛸 때 훨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문화답사 전문가들의 가슴 속에 품었던 신념이기도 했다.
그 현장 정신의 계보를 추적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인물이 하나 있다. 18세기 중반을 살았던 이중환이다. 그가 쓴 ‘택리지’는 무려 20년 동안의 현장답사 끝에 나온 책이다. 좋게 말해서 현장답사이지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20년간의 정처 없는 강호유랑이었다.
현장답사 즉 강호유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못하는 일이다. ‘끈 떨어진 연’이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은 끈이 떨어져 봐야 비로소 산천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이중환의 나이 38세(1727년)에 끈 떨어진 연이 되었다. 이중환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이 마음 편하게 살 만한 곳을 물색하였다.
환갑 무렵에 그 물색의 결과물을 책으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택리지’였다. ‘택리지’는 ‘정감록’과 함께 조선후기에 가장 많이 필사된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정보가 많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각 지역의 특산물이 무엇이고 물류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고, 풍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전국의 지세와 명당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고, 산수유람가들에게는 여행가이드북이 되었다.
‘택리지’의 현장 정신을 계승한 책이 이번에 나온 ‘다시 쓰는 택리지’(3권)이다. 이 책의 저자인 신정일도 20년 가깝게 답사 팀을 이끌고 전국의 산천을 답사한 답사전문가이다. 안 가본 산천이 없다.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이거니와, 산은 300곳 이상을 올라가 보았다. 강은 어떤가. 한강 514㎞, 낙동강 517㎞, 금강 401㎞, 섬진강 212㎞, 영산강 138㎞, 만경강 98㎞, 동진강 54㎞를 전부 발로 걸어다녔다. 도합 2000㎞의 강들을 상류의 발원지에서부터 시작해 하류 끝까지 두 발로 밟아본 인물이다. 낭인팔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성취(?)이다. 그는 길 위에 모든 것이 있다고 설파한다.
두 갈래 길을 만날 때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강호(江湖)의 낭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강호파는 가지 않는 길에 들어가 보는 사람이다.
저자는 이 책 2권(전라·경상편)에서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영남대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길이지만 조선시대 영남대로에는 세 갈래 코스가 있었다고 한다. 열나흘(14일) 길, 보름(15일) 길, 열엿새(16일) 길이 그것이다. 14일 길은 청도와 상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15일 길은 울산에서 의성~풍기~죽령을 넘어 단양에서 남한강 상류의 배를 타고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었고, 16일 길은 김해~성주를 거쳐 추풍령을 넘어 가는 길이었다. 과거 보는 선비들은 죽령은 ‘쭉 미끌어진다’,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피하였다. 반대로 문경새재는 ‘경사스러운 일을 듣는다’고 해서 선호했다고 한다.
14일 길의 중요한 포인트는 청도읍 고수리에 있었던 납딱바위였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이 바위에 앉아 청도천의 푸른 물결을 보면서 밥도 먹고 땀을 식히던 유명한 바위였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철도 신호대에 표지판만 남아 있다.
호남에서 유명한 포구가 전남 해남군 현산면에 있던 백방포(白房浦) 였다. 현재의 땅끝 마을 근처이다. 백방포는 중국으로 가던 유명한 바닷길의 출발지였다. 신라의 최치원이나 김가기가 당나라 유학 갈 때 출발하던 곳이었다. 순풍만 만나면 하루 만에 중국 영파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이 포구에는 남송으로 출발하는 여행객들이 가족들과 이별하거나 기다리던 곳이었는데, 현재는 간척을 해서 들판으로 변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북까지 포함해서 한반도의 수많은 길을 걸어 보았다. 지금 가는 이 길이 과연 나의 길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으나, 지내놓고 보니까 그게 나의 길이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조용헌·원광대 동양학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