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이 1000억원대의 안기부자금을 유용해 지난 96년 총선 등에 사용했다는 소위 ‘안풍(安風)사건’과 관련, 강삼재(姜三載) 한나라당 의원이 6일 법정에서 “그 돈은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김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해 다음달 12일 공판에 소환하기로 했으며, 1심에서 안기부 예산의 선거자금 전용으로 결론났던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전면 재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 의원은 이날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노영보·盧榮保) 심리로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940억원은 당시 내가 사무총장으로 있던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집무실에서 받았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검찰, 변호인측과 논의한 결과 일단 김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이 불가피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며 “3월 12일 공판에 김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소환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96년 총선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었던 강 의원은 이날 “총재(김 전 대통령)께서 출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고, 선거를 앞둔 상황이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되도록 쓰라는 뜻으로 알았다”며 “무덤까지 안고 가겠다고 생각했지만 국민과 역사를 배신할 수 없어 늦게나마 진실을 밝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돈이 안기부 계좌에서 나왔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안기부 예산과 연결돼 있다는 것은 검찰 수사 후 언론 등을 통해 처음 알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공판에 함께 피고인으로 출석한 김기섭(金己燮) 당시 안기부 운영차장은 “총선에서 과반수 확보가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 내 독자적 결정으로 당에 돈을 전달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전달한 적이 없다”며 “이 돈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받은 것이 아니며, 다음 재판 전까지 내가 신한국당의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를 의견서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강 의원과 김 전 차장은 지난 95∼96년 지방선거와 총선을 앞두고 1197억원의 안기부 예산을 당시 신한국당과 신한국당의 후신인 민자당에 불법 지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에 추징금 731억원과 징역 5년에 자격정지 2년, 추징금 125억원이 각각 선고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강 의원의 이 같은 진술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 지인(知人)들에게 “그 돈은 당에서 만든 것일 것”이라며 자신과 무관함을 강조해왔다.
한편 한나라당 박진(朴振) 대변인은 “강 의원의 고백은 고뇌에 찬 결단으로 한나라당이 나랏돈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고 환영한 반면, 열린우리당 박영선(朴映宣) 대변인은 “강 의원의 진술은 안풍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물타기하려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영환(金榮煥) 대변인은 “이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며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져야 하고 한나라당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