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은 특이하게 꼭 쑥을 넣은 된장찌개만 잡수셨어요. 또 요란한 식단을 싫어해 반찬은 3~4가지만 올렸지.”
‘장원’에서 ‘향원’으로 이어지는 원조 한정식집을 운영하며 50여년간 ‘대모’로 불려온 주정순(朱貞順·83)씨. 그런 주씨가 이달을 끝으로 식당일에서 손을 뗀다. 남 접대하느라 정작 자신은 매일 김치와 장아찌로 끼니를 때웠다는 주씨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쉬면서 하나님의 부름을 기다려야겠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던 주씨가 서울로 올라와 종로구 청진동에 ‘장원’을 차린 것은 1공화국 시절인 1958년. 손님들의 식성을 일일이 파악해 식단을 짜고, 미로 같은 골목을 만들어 손님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등 꼼꼼한 배려로 소문이 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웃 한옥 10채를 계속 사들여 76년에는 대지 305평에 3층 별관 건물을 짓는 등 호황을 누렸다.
‘장원’은 자유당 시절부터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단골로 드나들면서 한때 한국 막후정치와 밀실회담의 본산으로 통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 대부분을 비롯해 장면 신익희 조병옥 이후락 등 정·관계 인사, 정주영 이병철 최종현 등 재벌 총수들까지 수시로 주씨의 식당 문을 드나들었다.
종업원만 100여명을 거느리며 30여년간 번성하던 ‘장원’은 그러나 국회의사당이 여의도로 떠나가고 정부 청사가 과천으로 분가하면서 고객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빌려쓴 사채가 늘어나 87년에 폐업하는 운명을 맞았다.
이후 주씨는 1년 정도 쉬다 종로구 신문로에 ‘향원’으로 간판을 바꿔 다시 한정식집을 열었지만, 90년대부터 정치밀담의 ‘주무대’는 고급호텔과 룸살롱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장원의 음식 맛을 못 잊는 옛 단골들이 꾸준히 찾아주었어요. 정몽준, 최태원 회장 등은 대를 이어 방문했고, YS는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도 직접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죠.”
주씨는 종업원들을 엄격하게 교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주일에 한 번씩 전체종업원회의를 열어 예절교육을 시키고 손님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밖에 새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단속했다. 그런 탓인지 주씨는 몇몇 인사의 간단한 식성 외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런 음식점을 하려면 벙어리가 돼야 해. 손님들 술버릇이나 숨겨진 이야기는 평생 가슴에 묻고 가야지. 이런 거 못 지킨 종업원들 몇 명 ‘모가지’를 쳐 내가 인심을 좀 잃었어요.”
그래서 얻은 별명이 ‘MP’(헌병)다. 지금도 옛 단골들은 음식점에 들를 때마다 “어이 MP, 나 왔어” 하며 주씨부터 찾는다고 한다.
이러한 엄격함 덕분에 주씨로부터 음식 솜씨와 운영방식을 배워 독립해 나간 종업원들만 20명이 넘는다. 이들은 업계에서 한때 ‘장원 대학’ 출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주씨는 ‘향원’도 종업원 김성신(여·33)씨에게 넘기고, 3월부터는 강남구 청담동에 조그마한 한정식집을 개업하는 큰딸(55)에게 조언을 하면서 음식점 일에선 완전히 손을 뗄 생각이다.
“평생 동안 돈을 좇지 않고 귀한 양반들에게 만족할 만한 한 끼를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장사를 해왔는데 남들은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찾아준 그분들께 감사할 따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