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이라는 게 이뤄진 적이 있다. 정리해고 자유화 등을 통해 IMF 외환위기가 초래한 경제 난국을 노사 합의를 통해 돌파하겠다는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의 의지가 낳은 산물이다.
선진국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노사정 대타협이 맺어지자 나라 전체에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욕이 넘쳤다. 언론도 성숙해진 노사에 찬사를 보냈다. 한국의 노사정 대타협은 실제로도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내용이 담긴 사회협약이었다.
하지만 노사정 대타협은 ‘대(大)’자가 무색하게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논의에 참여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내부에서 ‘배신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민노총에서는 그후 선거가 있을 때마다 누가 당시 참여했느니, 사실 그렇지 않았으니 하는 문제가 이슈가 됐다.
민노총이 떨어져 나가자 이번에는 한국노총이 정부의 태도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까지 노사정위원회에서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자 경영계 대표 역시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습을 취하게 됐다.
불행하게도 노사정 대타협은 ‘무산’만 된 게 아니었다. 노동계는 노사정 대타협으로 양보했던 부분들을 무효화시키려 시도했다. 더 나가 고율(高率)의 임금인상, 노조의 경영 참여, 노동법 여러 조항 개정 등에서 줄기찬 투쟁을 시도한 끝에 여러 과실을 얻어냈다.
경영계도 이에 맞서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등에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것이 노사정 대타협이 5년 동안 가져온 산물이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더 활력을 잃게 됐다. 수년 전부터 심각성을 더하는 ‘이태백’(청년실업) 현상이나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장년실업) 현상은 중기적 관점으로 봤을 때 한국 노사의 이런 이기주의가 낳은 것이다.
과거 경제성장률이 1%일 때 일자리가 7만~10만개 창출되던 것이 지금은 3만개 정도에 그치는 것은 그간 산업구조가 중후장대형(重厚長大型)에서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IT형으로 바뀐 게 한 원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직원 채용 한번 잘못 했다가는 회사 망친다” “다시 경제가 나빠질 때 어떻게 인력을 감축하냐”는 인식이 기업의 뇌리에 맴돌고, “사회협약에 잘못 도장 찍으면 노동계에서 추방된다”는 두려움을 노동계가 극복하지 않는 한 제아무리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독려해도 기업과 노동계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사회협약은 내용보다 논의 과정에 참여한 각 주체의 약속 이행이 먼저 담보돼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약속을 깬 측이 ‘선명(鮮明)세력’으로 각인됐고, 약속 파기를 비난해야 할 쪽은 뭐가 구린지 슬금슬금 양보만 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올 2월 초까지 ‘일자리 창출 사회협약’ 체결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 일자리 창출 경제지도자 회의 구상까지 등장하고 있다. 토론과 세미나, 강연회를 선호하는 현 정부다운 발상이다.
총선까지 앞두고 다급해진 정부 입장에서 일자리 창출 사회협약이나 경제지도자 회의 개최가 가시적인 ‘한건’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5년 전의 사회협약이 가져온 부작용을 돌이켜보면, 참여정부의 이런 시도는 일단 TV 쇼 같은 정책을 추진했다가 국민의 망각증에 그 정책의 실패를 감추려는 속셈인지 모른다.
(문갑식 사회부차장대우 gsmo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