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아버지인 김순남은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구니타치(國立) 음악학교와 도쿄(東京) 제국음악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1942년 귀국하여 ‘성연회’라는 지하서클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음악운동을 주도하고, 1945년 9월 조선음악가동맹 작곡부장 겸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했다. 1948년 당시 북한 국가(國歌)의 대용으로 부른 ‘인민항쟁가’를 작곡했다는 이유로 체포령이 내리자 월북했다. 월북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을 지내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으나, 1955년 남로당계 반동예술인이라는 혐의로 숙청당했다. 김순남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음악 작곡가다. 작품집으로는 ‘산유화’(1947) ‘자장가’(1948) 등이 있고, 기악곡으로는 ‘교향곡’ ‘피아노3중주’ ‘현악4중주’ 등이 있다. 작품 경향은 현대적·정서적·민족적이다. 월북 음악인이라는 이유로 연주가 금지돼 있다가 1988년에 해금됐다.
김세원은 1964년 동양방송 성우1기로 데뷔한 방송인으로 지난 40년 동안 음악방송 진행자, 다큐 방송의 내레이터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교육방송(EBS)의 이사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