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부가 1949년 공산중국 건국 이래의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 한국전쟁 관련 문서는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하였다.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는 공개한다는 국제협약에 따라 중국은 국내 문건법을 제정했다. 이어 ‘외교부 문건열람처’라는 기구를 개설, 1차로 1만여건의 문서를 공개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투명행정과 경제발전에 따른 자신감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서다.
중국이 한국전쟁 관련 문서를 비공개하는 것은 외교문서 기밀해제가 중국의 대외관계를 위험에 빠뜨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국 당국자의 친절한 설명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외교문서를 공개할 경우 남북한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문서공개 거부는 즉시 철회되어야 하고 추가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한국전쟁은 단순히 한반도에서 일어난 내전(內戰)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2차대전 이후 자유세계와 공산세계 간의 충돌이라는 측면에서 전쟁의 발발(勃發)과 전개 및 종전 상황 등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특히 이번 문서해제는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외교문서 3000여권의 자료를 대상으로 한다. 이 기간 중 중국의 국제관계는 중공의 성립 및 1955년의 중-소분쟁 상황을 제외하면 한국전쟁 관련 대외관계가 핵심이 된다. 결국 이를 제외하는 것은 알맹이를 빠뜨리는 것으로 중국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이 주장하는 ‘공중 서비스의 구체적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중국의 문서해제는 한국전쟁 원인 및 책임론을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역사적 증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수정주의 이론 등에 근거하여 한국전쟁의 발발과 관련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중국측의 내부문건이 공개되고 있지 못한 데도 기인한다.
1950년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후 김일성은 5월 13일 베이징에서 모택동에게 스탈린과 가진 회담 내용을 통보하고 협조를 요청하였다. 당시 모택동은 미국과 일본의 개입을 우려하여 신중한 입장을 보였으나 김일성의 주장을 결국 수용했고, 5월 15일 최종적으로 조선인민군의 남침 및 유사시 중공군의 북한지원 합의라는 역사적 사실이 현재까지는 모스크바측의 관련자 증언에서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중국이 한국전쟁 문서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20세기 중후반의 동아시아 역사 중 중요한 대목이 미궁(迷宮)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도 북한관련 문서를 모두 공개했다. 중국도 이에 동참하여야 할 역사적 소명이 있다. 또한 중국의 문서공개는 남북한, 중·러·미국 등 강대국이 참여한 한국전쟁의 퍼즐 맞추기를 완성시켜 당면한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합리적인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학계 내부에서조차 중국이 북한과 동맹을 위해서 치른 수십만명의 중공군 희생을 알리기 위해서도 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당시 중공지도부가 ‘미국에 반대하고 조선을 지원하며 가정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킨다’는 항미원조보가위국(抗美援助保家衛國)의 기치 아래 대규모 병력을 한국전에 투입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이제는 밝혀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것은 이념 아래 희생된 수백만의 망자(亡者)들에게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남성욱·고려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