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철거 공사 중 조선시대 건축물 잔해로 추정되는 장대석(長臺石·길게 잘 다듬은 돌) 등이 발견돼 문화재청이 공사중단 명령< 본지 1월 21일자 A6면 >을 내린 서울시 종로구 ‘피맛골’ 재개발 공사 현장< 지도 >의 철거 작업이 재개된다. 그러나 철거 외에 터파기 등 다른 공사는 시굴(試掘·정식 발굴 전에 시험적으로 하는 발굴) 여부 등을 결정하기 위해 소집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때까지 잠정 중단된다.

문화재청은 26일 전문가 현장 조사를 통해 철거 현장에서 나온 건축 폐기물들은 문화재 지표조사 전문기관의 전문가 입회하에 반출하도록 하되 폐기물 중 유물로 추정되는 물건들은 따로 수집한 뒤,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 심의를 통해 이 지역 시굴 조사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조사에 참여한 문화재 전문가들은 “각종 문헌에도 이 지역이 육의전(六矣廛·조선시대 서울 종로에서 번성했던 상가) 등 조선시대 사회 생활상을 생생히 보여주는 곳으로 기록돼 있고, 유물로 추정되는 건축자재가 발견된 이상 시굴(試掘)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조사에는 조유전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과 장호수 문화재청 전문위원이 참여했으며, 매장문화재분과위원인 배기동 한양대 박물관장은 사전 답사를 한 뒤 자신의 의견을 문화재청에 구두로 통보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현재 피맛골 재개발 현장에서 발견된 건축물 잔해들이 설사 일제시대 이후의 것들일지라도 이곳에 있던 한옥 등 예전 건축물들은 터파기를 깊게 하지 않았다”며 “때문에 피맛골의 현재 지표 아래로 조선시대 문화 유적층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청계천 복원 구간 발굴에 참여하고 있는 문화재 전문가도 “광교 등 청계천 주변 지역을 발굴한 결과, 조선시대 문화 유적층은 현재의 지표보다 최소한 1m는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며 “현대에 들어와 청계천 주변을 일정 높이로 돋운 뒤(복토·覆土) 건축물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유전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사진 오른쪽 가장 앞쪽)이 26일 청진동 피맛골 재개발공사 현장에서 철거된 건축자재들의 유물 여부를 살피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피맛골 등을 시굴하자는 게 이 지역을 개발하지 말고 무조건 보존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도심 재개발 때 문화재 보존을 위한 최소한의 원칙을 세웠다고 이해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타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앞으로 서울 4대문 안 도심 재개발 사업 때는 해당 지역의 역사와 건축물 현황, 민속과 지명 변천 등을 포괄하는 문화재 지표조사(地表調査)를 하도록 각 지자체에 권고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시굴·발굴 및 보존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재개발 공사 진행 중 내부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인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77번지 일대나 피맛골 외의 청진동 일대 도심재개발사업지역에도 공사 전 문화재 지표조사가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중학동 현장은 경복궁 외곽에서 망을 보기 위해 궁궐 남동쪽에 설치한 건축물인 동십자각(東十字閣·서울시 유형문화재 13호) 바로 남쪽이자, 조선시대 행정부인 육조(六曹)의 동편에 자리한 지역이다.

지금까지 궁궐 지역을 제외한 4대문 안 도심 공사 현장에서 정식 발굴조사가 실시된 적은 청계천 복원 공사 구간의 하천지역 발굴을 제외하고는 한 차례도 없었다. 1970년대 서울 도심 지하철 건설 사업 때처럼, 설사 유물이 출토돼도 출토된 유물만 따로 모은 뒤 공사를 강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문화재보호법이나 서울시 조례 등에 따르면, 대지 면적이 3만㎡ 이하이거나 사적 등 국가 문화재로부터 100m, 시·도 지정 문화재로부터 50m 밖에만 있으면 공사 전 문화재 조사 없이 건축 공사가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최소한 서울 4대문 도심 안에서의 재개발 공사 때는 문화재 사전 조사가 불가피하게 된 셈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는 도심 재개발 사업 때 문화재 조사를 사실상 의무화한 것이자, 도심 매장문화재(또는 문화유적) 보존의 원칙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