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위원회 노성대(盧成大) 위원장의 연두 기자회견은 많은 기대를 불러모은 자리였다. 방송위 노조의 반대로 우여곡절 끝에 가진 지난해 5월의 취임회견 이후 사실상 첫 공식 기자회견일 뿐더러, 디지털TV 전송방식에 관한 논란 등 현안이 산적한 시점에서 무언가 구체적이고 알맹이 있는 해결방안이 제시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30분에 걸친 회견문 발표가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1시간 넘게 계속되었음에도 남은 것은 물음표가 대부분이다. 다섯 명의 상임위원과 사무총장이 번갈아 보충 답변에 나섰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방송위가 이날 발표한 중점 추진과제는 모두 다섯 가지. 방송통신구조개편위원회 설치 추진과 방송품격 높이기 남북방송교류와 해외한국어방송 지원 시청자주권 확대 방송산업 경쟁력 제고가 그것이다. 방송위가 가장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첫 번째 과제는 한 마디로 방송위원회를 방송통신위원회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의 FCC(연방통신위원회)처럼 실질적인 권한과 역할을 행사하겠다는 것.
하지만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가 자신의 업무와 권한을 내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방송위는 노 위원장 취임 당시부터 이 정책에 대한 목청을 높여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관련 부서들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 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자 “관련 부처와 계속 협의 중”이라고 물러섰지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떠오를 뿐이다.
방송위는 또 올해 신규사업으로 해외 한국어방송 지원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KBS가 이미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고, 해마다 해외제작 우수작품을 시상까지 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중복 추진 우려가 제기됐다. 노 위원장은 “우선 실태조사를 해서 어떻게 차별화된 지원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태조사도 하지 않은 막연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신년 기자회견에 주 메뉴로 올라왔는지 의문이다.
정작 관심의 초점이었던 디지털TV 전송방식과 17대 총선 선거방송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가 중지를 모아 곧 답변을 내놓겠다” “공정한 선거방송을 위해 주어진 법적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공자님 말씀만 단답형으로 들려왔다. 방송위의 고민과 그동안의 노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 준비였다면 차라리 ‘기자회견’을 미루는 게 나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