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공평하다고 누가 그랬나. KBS 수목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의 여주인공 ‘김미옥’의 삶은 힘들기만 하다.
고등학교 때 이미 식당 허드렛일에서부터 신문배달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조강지처 버리고 가출한 아버지 대신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대학도 일찌감치 포기했고, 악착같이 돈을 벌었건만 정작 자기가 시집갈 땐 이불장 하나 달랑 혼수로 해갔다.
그래도 자존심은 하늘을 찔러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두말 없이 갈라섰다. 한평생 ‘횡재’ ‘호강’ ‘남자 복’ ‘공짜 밥’과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일까, 대형 할인점 생선 코너에서 근무하는 이 여자는 우선 생선 다듬는 도마 소리가 남보다 보통 박력있는 게 아니다.
앞서 드라마 ‘거짓말’(98년)과 ‘바보같은 사랑’(2000년)으로 매니아 층을 형성한 노희경 작가는 ‘꽃보다 아름다워’를 쓰기 시작하면서 주인공 김미옥 역을 배종옥에게 맡겼다. 작가는 지금 꽤 흐뭇할 것 같다. 팔팔하고 괄괄하지만 실은 마음이 여린 여자, 김미옥을 배종옥이 감칠맛 나도록 똘똘하게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종옥은 85년 데뷔한 뒤 지금까지 봉제공장 미싱 보조(KBS ‘바보같은 사랑’), 소방서 구급계장(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 다양한 배역을 섭렵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역시 지적이고 냉철한 전문직 여성을 연기할 때였다. 그렇게 말했더니, 배종옥은 “글쎄요” 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능한 한, 나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스스로를 확장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늘 똑같은 배역에 매여있거나, 어딘가에 멈춰있는 게 싫었지요” 했다. 김미옥 역에 대해서는 “전에 해온 역과 달라 연기할수록 재미가 있다”고 했다.
사실 시청률만 따지자면 ‘꽃보다 아름다워’는 SBS ‘천국의 계단’과 MBC ‘천생연분’ 사이에서 1~2등과 10% 넘게 격차가 벌어진 ‘꼴찌’다. 그러나 배종옥은 진심으로 ‘시청률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한 5~6년쯤 됐나요? ‘어차피 내가 1년에 드라마 하나 아니면 둘 찍을텐데,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 주제에 공감이 가는 작품만 골라서 하자’고 결심했어요. ‘꽃보다 아름다워’는 요란한 포장을 전혀 하지 않은 드라마예요. 시청률을 겨냥하고 독하고 요란하게 줄거리를 풀어나가는 대신, 상처가 많은 보통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요. 시청자들이 TV를 보면서 ‘맞아, 사는 게 그래’ 하고 무릎을 치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지요. 그 점에서, 자신 있어요.”
배종옥은 “스무 살 때는 남자건 여자건 능력있는 사람이 좋았는데, 지금은 편안한 사람이 좋아요” 했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 같아요”하고 덧붙였다. “스무살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마음에 든다”는 이 여배우는 “대중은 앞으로도 내게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나를 외면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언제나 나의 길을 갈 것”이라고 또박또박 말한 뒤 “그리고 대중이 처음엔 좋은 작품을 외면한다 해도 막판에는, 전부는 아니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보석을 알아봐 준다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꽃보다 아름다워’의 시청률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