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난 여름에 나와 함께 목욕하면서 딸은/ 이게 구슬이나? 내 불알을 만지작거리며 물장난하고…구슬이나? 불알이나? 딸의 어릴 적 질문법에 대하여/ 아빠가 시를 하나 써야겠다니까 여중 2학년은/ 아니 아니 아빠 저를 망신시킬 작정이세요?/ 문법도 경어법도 딱 맞게 말하는 토요일 오후/ 모의고사를 열 문제나 틀리고도 행복하기만 한/ 강남구에서 제일 예쁜 내 딸아 아이구 예쁜 것!’

오탁번의 ‘토요일 오후’는 딸에게서 누리는 무한한 행복을 익살맞게 풀어놓는다. 그런 딸을 시집 보내며 부모들은 애틋한 마음에 젖게 마련이다. 돈에 쪼들리며 아내를 고생시켰던 마르크스도 사윗감의 시원찮은 수입은 못마땅해서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전 재산을 혁명적 투쟁에 썼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네. 하지만 내 아내의 삶을 산산조각 냈던 가난으로부터 내 딸만은 지켜주고 싶네.’

부모와 딸 사이 정서적 친밀도는 뻣뻣한 부자(父子) 사이와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런 딸 사랑 위에, 급속한 핵가족화, 아내들의 집안 주도권 확보, 맞벌이 부부 증가가 겹치면서 처가(妻家)에 기대는 현상이 보편화하고 있다. 가사와 육아를 부탁하기 편한 쪽은 역시 친정 어머니다. 가족 휴가도 처남·동서들과 가는 경우가 많고, 이민도 처가 쪽 연고로 떠나는 예가 압도적이다. 외국 사는 이모는 아이 조기유학을 돌봐줄 이상적인 보호자로 꼽힌다.

그렇듯 ‘장모의 시대’가 왔음을 엊그제 여성부 조사가 숫자로 확인해준다. 응답자들은 ‘경제적 도움을 주는 부모’로 남편 쪽(11%)보다 아내 쪽(18%)을 많이 꼽았다. 남편 형제(4%)보다 아내 형제(23%)에게 느끼는 정서적 유대도 훨씬 강하다고 했다. 이를 두고 신(新)모계사회의 도래라고 거창히 여길 일도, 전통 가족관계의 몰락이라고 개탄할 일도 아니다. 요즘 세대들이 형식과 전통보다, 아이 키우고 직장 다니기 편한 실리를 앞세우는 세태 탓일 뿐이다.

처가와 가까이 살며 자주 왕래하다 보니 새로 생겨난 부작용이 장인·장모의 간섭이다. 사위 하는 게 양에 안 차 타박하기 십상이다. 처가살이와 모계 전통이 강한 부탄에서는 처가와 사위의 갈등이 흔한 이혼사유라고 한다. 우리도 장차 고부(姑婦)갈등 대신 장인-사위의 옹서(翁壻)갈등이 부각되면, 지금 처가와의 밀월관계에 또 어떤 무게 이동이 올지 모를 일이다.

(오태진·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