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서양화 같은 제목의 이 소설집은 현실세계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뚜렷한 이유 없이 참을 수 없는 열정에 휩싸이거나 밑바닥을 모르는 불안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기도 한다.

11편의 단편이 담긴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설정과 서사 전개는 현대인의 내면에 들어 있는 도착적인 충동이나 악몽 같은 공포감을 드러내는 실험적인 장치로 활용된다.

표제작은 “누군가가 내 삶에 틈입하게 될 것만 같은 상서로운 예감”(13쪽)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비가 오던 날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된 이야기다. 화가 지망생인 주인공의 삶에 예고없이 침입한 이 여자는 일상으로 대표되는 기성 질서에 타격을 가해 그 안에 숨겨진 허위·위선의 모습을 고통스럽게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화실 겸 자취방에서 바라본 하천변 풍경과 쇠라의 그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대비된다. 그랑드 자트의 세계가 일견 견고하고 안정되게 보이는 주류 세계의 모습이라면 천변 풍경은 그 안에 드리워진 불안한 그림자를 드러낸다. 이 둘의 세계는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며 길항작용을 반복한다.

그의 소설은 기존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장면을 실마리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폭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패러디한 ‘기호태전(傳)’은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임을 자처하는 주인공의 엽기적인 행각을 통해 그 순수한 영혼마저 사라져 버린 비속한 시대의 타락한 단독자의 초상을 그렸다. 이는 고삐 풀린 광기의 시대, 순수하고 위대한 정신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세태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으로 읽힌다.

각기 뚜렷한 성격의 등장인물이나 극도로 단순화된 작품 배경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하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배치된 각양각색의 등장인물은 때로는 연극 대사처럼 과장되게 소리치거나 울부짖는가 하면 지독한 불안이나 살인의 충동에 시달리기도 한다.

작가는 “기존의 소설 문법과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며 “다양한 형식실험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이야기에 빠지게 하는 대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낯설게 바라보도록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