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특수부대뿐만 아니라 민간인 어부들도 북파공작에 동원된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문화일보가 1 5일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이날 ‘인권실천시민연대’와 1966년 북한에 다녀온 백평조(78·경남 고성군)씨 등 경남 통영 인근 출신 어민 4명, 전직 해군특수부대원 등의 증언을 토대로, 해군 방첩부대 이모 당시 소령(해사 6기·75년 사망)이 1965년말 고향 선배인 백씨를 만나 어민들을 북한에 파견하는 공작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백씨를 비롯해 통영 앞바다의 욕지도·삼천포 등에서 모집한 선원 7명은 개별적으로 부산에 있는 주한미군부대 캠프 하얄리아에서 최대 3개월까지 북파교육을 받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1966년 5월 해군 지령에 따라 북방 한계선을 넘어 조업하다 북한군에 나포(‘위장납북’)된 이들은 평양 국제호텔 등에서 북한의 조사를 받으며 평양 관광도 했다는 것. 북한 당국은 이들이 “고기 잡다가 모르고 넘어왔다. 남한으로 돌려보내달라”는 말을 거듭하자 그해 9월13일 이들을 남한으로 돌려보냈다. 백씨는 그 후 부산에서 2개월간 조사를 받았다고 문화일보는 보도했다.
이후 이들은 40여년간 경찰과 정보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본인뿐 아니라 가족·친지까지 요 시찰자로 분류돼 신원조회 등에서 각종 불이익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현재 북한에 다녀온 선원 중 백씨와 정정웅(64)씨, 박경열(77)씨, 박장순(68)씨 등 4명이 생존해있다고 문화일보는 보도했다. 이들은 최근 자신들을 담당했던 당시 경남경찰국 대공과 직원 이모(67)씨로부터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하는 각서와 인감 증명을 받았다. 이들은 부산에서 만난 문화일보 기자에게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이와관련, 해군첩보부대 UDU동지회 관계자는 “이모 소령을 잘 알며, 당시 정황을 볼 때 어민들이 북파공작에 동원됐음이 틀림없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와 관련,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이들은 냉전시대의 희생자들로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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