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군 오곡면 소재지에서 산길을 따라 5㎞쯤 가다 보면 구성리 명산마을이 나온다. 시골 어린이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날 것 같은 조그만 폐교는 전통음식인 부각을 생산하는 일터가 되었다. 이곳에선 김을 비롯한 여러 재료를 혼합하고 말리고 다시 튀기고 기름을 빼는 절차에 따라 직원 30여명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 시설능력으로선 최대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농업벤처기업인 ‘생자연(生自然)’ 대표 오희숙(吳喜淑·48)씨와 남편 윤형묵(尹亨默·53)씨는 작업현장을 지도하랴, 발송내역을 확인하랴 바쁘기는 매 한가지였다. 올 매출목표액은 25억원. 이중 수출은 24%인 6억원이다. 지난 해와 목표액이 같다. 올해도 연중 최대치로 가동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

“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농장을 설립하고, 시설도 늘려갈 계획입니다.”

국내에는 현재 50여개 업체가 부각을 생산하고 있다. 이곳이 가장 먼저 시작했고, 가장 큰 규모이다. 부각의 상품화는 오씨 부부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회사의 브랜드는 ‘오희숙 전통부각’. 부각은 식물성 농수산물을 주원료로 찹쌀풀을 발라 여러 양념으로 맛을 낸 전통음식의 한가지. 오씨가 1977년 결혼, 서울에서 살다가 1982년 남편의 고향인 경남 거창으로 이주해 시어머니(이진혜·李鎭惠·85)로부터 파평 윤씨 종가의 내림음식을 전수받은 것이 계기였다.

‘부각’의 상품화는 1992년부터였다. 오씨는 “거창 YMCA간사를 하면서 두부, 고추장 등 전통식품을 발굴, 생활협동조합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 큰 경험이었다”고 했다. 전통 장(醬)류 보유자는 많았지만, 부각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남편직장을 따라 서울로 다시 이주한 오씨는 “한번 만들면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창업자금은 500만원이었다. 오씨 부부가 살고 있던 서울시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 아파트 일원의 주부들과 유기농단체들이 주고객이었다. 처음에는 집안에서 만들다가 주문량이 늘자 30평의 작업장을 마련해 7~8명이 작업했다. 오씨는 “첫 해 결산을 해보니 자산이 4~5000만원으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이 업체의 가장 큰 성공비결은 ‘박람회를 통한 홍보’. 남편 윤씨가 해외에 중소기업제품을 홍보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외국인 구매자들에게 부각을 선물, “독특한 맛이 있는 한국식 스넥”이란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1995년 5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식품기술전’에 출품했다. 이를 계기로 백화점으로부터 입점요청을 받았고, 일본인 관광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수출을 시작케 되었다.

윤씨는 “저희들은 박람회를 통해 성장했다”며 “가방들고 뛰어다닐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거래처를 박람회에서 발굴했고, 판로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1995년 이후 일본 동경을 비롯 독일 베를린, 대만, 중국 청도, 일본 오사카 등지에서 열린 모두 20여 회의 세계식품박람회에 부각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 시카고·뉴욕·하와이·LA, 일본 동경·오사카, 대만, 중국 상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

매출액이 크게 신장되자 공장을 늘리기로 하고 전남 곡성으로 옮겼다. 공기와 물이 깨끗한 산간인데다 노동력이 풍부하고 참깨, 콩, 찹쌀 등 부각재료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 그 때가 1997년이었다. 남편이 퇴직하고 본격 합류했다.

항상 사업이 쉬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단순히 튀긴다고 스넥이 되지 않았다.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해야 했다. 눅눅하지도 부서지지도 않아야 한다는 ‘간단한’ 문제가 결코 쉽지 않았다. 포장지와 디자인도 산뜻해야 했다. 순천대 공업연구소, 목포대 식품개발연구소와 손잡고 연구를 진행했다. 현재 30건을 특허출원, 발명특허 3건, 상표등록 6건, 실용신안 1건을 등록했다.

현재 상품은 인삼·더덕·도라지 등 산채류부각, 김·다시마 등 해조류부각, 고추·미역 등 당과류 새 분야로 모두 25가지이다.

오씨부부는 “부각이 국내에서 전통식품으로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세계인들로부터도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스넥’으로 호평을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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