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대학 성적 정정기간을 맞은 최근, 각 대학 교학과에는 이런 문의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오고 있다. 졸업을 코 앞에 남겨 뒀지만 아직 취직이 되지 않은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뒤늦게 졸업을 미루기 위해 비법을 묻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대학 마지막 학기의 예비 성적을 열람한 K대 김모(불문과 4년생)씨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김씨의 성적 평점은 4.0/4.5로 상당히 좋은 편. 하지만 지난 한해동안 16군데가 넘는 대기업 입사 전형에 줄줄이 낙방한 김씨는 이대로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 성적 정정기간은 5일까지. 며칠 동안의 고심 끝에 결국 김씨는 단과대 교학과로 전화를 걸어 “졸업을 1학기만 더 늦출 수 없겠냐”고 물었다. 교학과에서는 “졸업학점을 이미 채웠으니 방법이 없지만 …한 과목을 F학점을 받으면 되긴 한다”고 슬쩍 귀띔해 주었다.
김씨는 역사과목을 담당했던 강사 이모씨를 찾아가 “이 과목에서 B+학점을 받았는데 이를 F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황당해하는 강사를 붙잡고 “이렇게 졸업하면 갈 데도 없고, 다른 사람들 시선도 부담스러우니 한번만 봐달라”고 계속 간청하자, 강사는 결국 F처리를 해주고 말았다. 이씨는 “취업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지만 일부러 F를 달라고 찾아오는 졸업생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며 “이런 학생들이 다른 학교에도 많다고 하던데 정말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H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임모(여·24)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토익 930점에 대학 평점도 우수하지만, 임씨는 13군데의 언론사 입사전형에 번번이 실패했다. 임씨는 처음에는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지만, 내년 입사준비를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 졸업유예를 선택했다. 임씨는 “지난달 12일쯤 담당교수를 찾아가 학점을 F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S대 학사지원부는 “졸업 예정자들이 졸업를 미루는 방법을 물어오는 경우가 이번 학기에 유독 많았다”며 “일부 졸업자들은 일부러 졸업자격 인증이나 졸업 논문을 내지 않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학부과정을 수료한 것이 돼 소용이 없고 담당 교수를 찾아가 F학점 줄 것을 요청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취업 때문에 졸업을 한 학기 미룬 Y대 불문과의 김모(25)씨는 “이번 학기 18명 졸업예정자 중 겨우 4명이 취업이 돼 나를 포함한 6명이 졸업연기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 학기 더 내야 하는 등록금이 아깝긴 하지만 어차피 달리 할 것도 없고 소속된 곳이 없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라며 “학교 도서관을 전전하는 나 같은 졸업 유예족들이 올 봄 캠퍼스를 장악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