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앞둔 2004년 새해 첫날, 전직 대통령들의 자택에는 정치인들의 세배 행렬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서울 동교동 자택에는 1500여명의 세배객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뤘다. 특히 호남 표심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지도부와 소속의원들이 총출동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1일 김 전 대통령에게 문희상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을, 다른 전직 대통령들에게는 유 수석을 보내 신년인사를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유 수석에게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해 노 대통령도, 국민도 모두 힘들었다”고 지적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하고 보니 남는 것은 경제밖에 없더라”는 충고를 건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같은 구애(求愛) 공세에 대해 “전직 대통령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정치에 대해 관심도 많고 의견도 있지만…”이라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은 한 세배객이 “총선출마자들과 사진 좀…”이라고 말하자 “사진 찍으면 정치 개입하는 것”이라며 거절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택과 연결된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강당에서 DJ 정부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 출신 150여명을 만난 자리에서는 20여분간 ‘햇볕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역설, ‘특별강연’을 방불케 했다.
그는 “대북(對北) 관계를 개선하면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로까지 뻗어갈 수 있다. 이는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생에서 제일 보람 있는 것은 눈을 감을 때 뭔가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행복한 인생은 높은 데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뜻 있게 살고 후손들이 얼마나 그를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측은 세배를 마친 후 각각 “DJ의 애정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상도동 자택을 찾은 고건 총리,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서청원·박희태 전 대표와 민주당 조순형 대표,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 등과 환담했다. 김 전 대통령은 방문객들에게 “꾀를 내 소도(小道)로 가지 말고 대로(大路)로 당당히 가야 한다”며 “대통령은 법률 이전에 권위로 다스리는 것인데 지금은 그게 전부 상실됐다. 하야로까지 갈 수 있으니 노 대통령이 어떤 방법으로든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노태우·최규하 전 대통령의 자택에도 전직 총리와 장관 등 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