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1일 2차대전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기습적으로 참배했다. 그의 취임 이후 네 번째인 이번 참배는 마치 작심이라도 한 듯 새해 첫날을 택했고, 옷차림도 일본 전통 의상을 골랐다. 그와 전쟁관과 역사관을 공유하는 지지자들에게 뭔가를 호소하고 지지를 부탁하는 듯한 기색이 확 풍기는 정치적 제스처다.
그러나 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일본 국내적 의미만을 가질 수는 없다. 일본 총리가 보란 듯이 당당하게 태평양전쟁 전범들에게 참배한 이번 모습은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서 수많은 자국 국민이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고 강제 노역에 끌려가 이역에서 숨을 거둬야 했던 아시아의 여러 피해 국가들에 일본이 그 참혹한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는 참배 후 “어느 나라든 역사, 전통, 습관은 존중돼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일본이 자국의 역사와 전통, 습관을 존중하는 방식이 최고지도자가 피해자들의 눈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침략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을 추모하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예 과거의 침략전쟁에 관해 일본은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고 달라질 수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일본이 아시아의 피해 국가들에 최소한의 예의라도 차릴 생각이 있었더라면 2차대전 전범들을 제외한 새 추도시설의 건립 논의를 그렇게 쉽게 팽개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과거사 인식과 그에 따른 행동이 갈수록 거꾸로 가고 있는 사실은 일본뿐 아니라 동북아의 미래에 매우 불행한 일이다.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한다.